
냉동실에 넣어두면 안심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고춧가루만큼은 그렇지 않다. 냉동 보관 중에도 곰팡이가 생기는 사례가 적지 않고, 오히려 실온보다 더 많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유를 모르고 반복하면 매번 같은 결과가 나온다.
고춧가루는 흡습성이 강한 식품이다. 냉동실에서 꺼낼 때마다 급격한 온도 차로 표면에 결로가 생기는데, 고춧가루가 이 수분을 빠르게 흡수한다.
그 상태로 다시 냉동실에 넣으면 수분이 축적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곰팡이 번식 조건이 만들어진다. 꺼냈다가 넣는 횟수가 많을수록 위험도 커진다.
냉동보다 10℃ 냉장이 더 안전한 이유

농촌진흥청은 고춧가루 1kg 포장백을 -20℃·0℃·4℃·10℃에서 10개월 이상 보관하며 10일마다 곰팡이 발생량을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고춧가루는 10℃에서 곰팡이 발생량이 가장 적었고, 건고추는 0℃가 최적이었다. 냉동(-20℃)이 가장 안전할 것 같지만, 출납 반복에 따른 결로 문제로 오히려 불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
습도의 영향도 뚜렷했다. 상대습도 93%에서는 곰팡이가 급격히 증가했고, 51%와 69%에서는 발생량에 큰 차이가 없었다. 농촌진흥청이 습도 69% 이하 보관을 권고하는 근거다.
또한 건고추보다 고춧가루에서 곰팡이 발생량이 전반적으로 많았는데, 표면적이 넓어 수분과 산소에 노출되는 면적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소량씩 제조해 빠르게 소비하는 편이 장기 보관보다 안전한 이유다.
고춧가루 곰팡이가 특히 위험한 이유

고춧가루에서 주로 발견되는 곰팡이는 Aspergillus sp.(아스페르길루스)와 Penicillium sp.(페니실리움)이다. 이 중 일부 Aspergillus 종은 아플라톡신과 오크라톡신을 생성하는데, 아플라톡신 B1은 WHO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로 담배·석면과 같은 등급이다.
간세포 DNA를 직접 손상시켜 간암을 유발하며, 온도 25~35℃·상대습도 80% 이상에서 생성이 가장 활발하다. 여름철 밀폐 보관 환경이 이 조건에 가까운 셈이다.
아플라톡신은 한 번 생성되면 제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건조 상태 기준 270~300℃ 이상에서만 분해되기 때문에, 일반 조리 온도인 100~200℃로는 잔존한다.
2020년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일가족 12명이 냉동 보관 음식을 먹고 9명이 식중독 증상을 보인 뒤 7명이 사망한 사건의 원인도 아플라톡신 기준치 초과였다.
올바른 보관 조건과 주의사항

고춧가루는 10℃·습도 69% 이하, 건고추는 0℃·습도 69% 이하가 농촌진흥청 권고 기준이다. 가정에서 정확한 온도 관리가 어렵다면, 냉장 보관하되 꺼낼 때마다 뚜껑을 바로 닫아 외부 노출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곡류·견과류처럼 아플라톡신 오염 위험이 있는 식품도 온도 10℃ 이하·습도 60% 이하 조건을 지키는 게 좋다.
눈에 곰팡이가 보이는 식품은 즉시 폐기해야 한다. 가열해도 독소가 잔존하기 때문에, 보이는 부분만 걷어내고 나머지를 쓰는 것은 위험하다.
냉동이 만능 보관법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꺼내는 횟수가 곰팡이 발생과 직결된다는 점이 핵심이다. 보관 온도보다 보관 습관이 더 중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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