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겹살을 구운 팬을 씻을 때 물을 먼저 붓는 건 사실 역효과다. 기름이 물과 함께 배수관으로 흘러들면 관 안에 쌓여 막힘과 악취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뜨거운 물로 기름을 녹여 흘려보내는 습관이 여전히 흔하다.
이때 세제보다 먼저 꺼내 쓸 수 있는 게 밀가루다. 전분이 75-80%를 차지하는 밀가루는 미세하고 다공성인 입자 구조 덕분에 기름을 흡착해 덩어리로 뭉치게 한다. 물이나 세제 없이도 기름기를 물리적으로 걷어낼 수 있는 원리인 셈이다.
삼겹살 팬 기름, 물 대신 밀가루부터

팬을 완전히 식힌 뒤 마른 상태에서 밀가루를 넉넉히 뿌리는 게 시작이다. 기름이 아직 고여 있다면 밀가루가 금세 기름을 빨아들이며 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이걸 키친타월이나 신문지로 걷어내면 기름의 대부분이 제거된다.
이후 세제를 써서 마무리 설거지를 하면 거품이 훨씬 잘 나고 헹굼도 수월해진다. 같은 방법이 접시나 국자처럼 기름기 많은 주방용품 전반에 그대로 적용된다.
유통기한이 지난 밀가루도 곰팡이가 없고 건조한 상태라면 이런 청소용으로 충분히 쓸 수 있다. 다만 습기를 먹어 굳거나 냄새가 나는 밀가루는 미생물이 번식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청소용으로도 사용하지 않는 편이 낫다.
김치 냄새 밴 통, 밀가루 물로 해결

플라스틱 밀폐용기에 김치나 젓갈을 보관하면 냄새가 쉽게 배는데, 세제로 씻어도 냄새가 잘 가시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때 빈 통에 밀가루 한 큰술 정도와 미지근한 물을 조금 넣고 뚜껑을 닫은 뒤 흔들면 내부 전체에 밀가루 슬러리가 접촉하면서 냄새 분자를 흡착한다. 충분히 흔든 뒤 헹궈내면 세제만 썼을 때보다 냄새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과일 세척에도 응용할 수 있다. 사과나 포도 표면에 밀가루를 얇게 뿌리고 손으로 살살 문지른 뒤 흐르는 물에 충분히 헹구면 표면의 유분이나 먼지 같은 오염물이 전분 입자에 달라붙어 함께 씻겨 나간다.
다만 밀가루는 물리적 흡착 수준의 세정이므로, 농약이나 왁스 제거가 목적이라면 베이킹소다나 전용 세척제를 쓰는 것이 더 확실하다.
싱크대 주변 기름기, 밀가루가 마른걸레 역할을 한다

조리 후 싱크대 주변 타일이나 상판에 튄 기름을 물티슈로 닦으면 기름기가 퍼지기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물기 없는 밀가루를 조금 뿌리고 키친타월로 가볍게 문지르면 기름이 밀가루 입자에 달라붙어 한 번에 걷어진다.
물이나 세제를 쓰지 않아도 되니 타일 줄눈에 물이 스며드는 것도 막을 수 있다. 가스레인지 상판이나 손잡이처럼 기름이 굳어 얇게 막을 형성한 곳에도 같은 방식으로 쓸 수 있는데, 밀가루를 뿌리고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러 기름을 뭉친 뒤 닦아내면 세제 없이도 상당 부분 제거된다.

이 방법의 또 다른 장점은 합성세제 사용량을 줄인다는 점이다. 밀가루로 기름을 1차 제거한 뒤 세제를 쓰면 거품이 훨씬 잘 나고 헹굼 횟수도 줄어든다.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곰팡이 없이 건조한 밀가루가 있다면 이런 용도로 활용하기에 딱 알맞다.
밀가루의 쓸모는 기름 흡착이라는 단순한 물리 원리에서 온다. 세제처럼 오염을 분해하는 게 아니라 기름을 감싸서 물리적으로 걷어내는 방식이어서, 세제보다 먼저 쓸 때 진가가 드러난다.
냉장고 한구석에 잠들어 있는 묵은 밀가루가 있다면 주방 청소에 한 번 써보자. 팬도, 싱크대도, 냄새 밴 통도 생각보다 깔끔하게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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