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좀 많이 오나 했더니”…농민들 줄줄이 한숨 쉬게 만든 ‘이 과일’ 현실

by 김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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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년 3배 가을비에 전국 사과밭 초비상, 열과 피해 확산

사과나무
사과나무 /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한 달간 충북 지역에 쏟아진 비는 277.6mm로, 평년 강수량(98.7mm)의 약 3배에 달하는 기록적인 수치다. 수확의 계절 가을에 이어진 이례적인 ‘가을장마’는 한국인의 대표 과일인 사과 재배 농가에 직격탄이 됐다.

경북 영덕과 청송, 충북 충주와 제천 등 전국의 주요 사과 산지에서 껍질이 터지는 ‘열과(裂果)’ 현상이 확산하며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열과 피해의 과학적 원리

사과
사과 / 게티이미지뱅크

열과 현상은 과일이 성장하는 속도를 껍질이 따라가지 못해 갈라지는 현상이다. 특히 오랜 가뭄 뒤에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거나, 이번처럼 비가 지속될 때 발생하기 쉽다.

나무가 뿌리를 통해 과도한 양의 수분을 흡수하면 과육이 급격히 팽창하는데, 이때 껍질의 신축성이 한계에 부딪히며 터지게 된다. 여기에 가을장마로 인한 일조량 부족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과 껍질은 조직이 약해지고 탄력이 떨어져 작은 압력에도 쉽게 손상된다. 또한, 일조량 부족은 사과의 착색과 당도 형성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상품성 자체를 크게 떨어뜨린다.

산지별 피해 확산과 농가의 이중고

사과
사과 / 게티이미지뱅크

피해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충주시 안림동의 한 농가는 매일 아침 과수원에서 나무 한 그루당 서너 개씩 터진 사과를 발견하며 한숨을 쉬고 있다.

농가들은 지난해에는 극심한 더위와 싸웠는데, 올해는 끝없는 비가 문제라며 속수무책인 상황을 토로한다. 제천의 농가들은 내년 설 대목 출하를 위해 저장해야 할 만생종 ‘부사’ 품종의 착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상품 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청송 사과’로 유명한 경북 청송군 역시 주력 품종인 ‘시나노골드’의 열과 피해율이 약 10%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송군은 피해 농가의 경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기존에 시행 중이던 저품위 사과 수매 지원 사업에 군비를 추가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20kg 상자당 5,000원을 추가 지원해 총 17,000원에 수매하는 긴급 대책을 마련했다.

농가·소비자·지자체에 미치는 연쇄 영향

사과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이번 사과 열과 피해는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농가는 수확량 감소와 상품성 하락으로 인한 직접적인 소득 감소에 직면했다.

정품 사과를 출하하지 못하고 가공용으로 저렴하게 넘겨야 하는 상황이 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고품질 사과의 공급량 감소로 인해 향후 사과 가격이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

사과
사과 / 게티이미지뱅크

특히 명절 제수용이나 선물용 사과의 가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반면, 피해를 입은 사과가 주스나 잼 등 가공식품 시장으로 대거 유입될 수도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청송군의 사례처럼 피해 농가를 위한 긴급 지원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재정적 부담을 안게 됐다.

기상 당국은 북쪽의 찬 공기와 남쪽의 따뜻한 공기가 한반도 상공에서 충돌하며 비구름대가 장기간 머문 것을 이번 가을장마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비는 18일 이후 잦아들겠지만, 이미 발생한 피해를 복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사태는 기후 변화가 우리 식탁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로, 안정적인 농산물 생산을 위한 장기적인 기후 적응 대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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