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 원에 거래되던 약초… 만병통치약으로 알고 있던 ‘봉삼’의 실체

by 김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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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삼 사기 사건’의 진실, 백선(白鮮)이라는 한국 토종 식물의 두 얼굴

백선
백선 / 국립생물자원관

초여름 산길을 걷다 보면, 흰 꽃잎에 선명한 자줏빛 줄무늬를 새긴 청초한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독특한 향기까지 품은 이 식물의 이름은 백선(白鮮).

하지만 이 아름다운 모습 뒤에는 한때 대한민국을 뒤흔든 거대한 사기극과 죽음까지 부른 치명적인 독성이 숨겨져 있다. 바로 산삼을 능가하는 만병통치약 ‘봉삼(鳳蔘)’의 두 얼굴이다.

아름다운 야생화, ‘봉황삼’이라는 탐욕의 이름을 얻다

백선
백선 / 국립생물자원관

사건의 발단은 한 오래된 문헌의 오독과 탐욕에서 시작됐다. 일부 약초꾼들이 “뿌리 모양이 봉황을 닮은 삼(蔘)이 있어 봉삼이라 한다”는 기록을 교묘하게 왜곡, 인삼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백선이 마치 전설 속 영약인 것처럼 포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유명 인사가 백선을 먹고 지병을 고쳤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성공담이 퍼져나가면서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입소문은 꼬리를 물고 부풀려졌다. 말기 간 질환, 폐결핵, 관절염 등 현대 의학으로도 어려운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신화처럼 번졌고, 일부 승려나 사이비 전문가까지 가세해 백선을 ‘산삼을 능가하는 선약’으로 치켜세웠다.

결국 한 뿌리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호가하는 비상식적인 투기 대상으로 전락했고, 수많은 사람이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진짜 비극은 돈을 잃은 것에 그치지 않았다.

희망 대신 찾아온 죽음… ‘독초’의 정체를 드러내다

백선
백선 / 국립생물자원관

백선을 ‘봉삼’이라 믿고 복용한 이들이 희망 대신 마주한 것은 심각한 건강 악화, 그리고 죽음이었다.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보고한 한 50대 여성의 사례는 그 비극을 명확히 보여준다.

몸에 좋다는 말만 믿고 직접 채취한 백선 뿌리를 달여 8주간 매일 4~5잔씩 마셨던 이 여성은, 식욕 저하와 황달, 복부 통증을 호소하다 결국 ‘광범위한 간세포 괴사’로 인한 급성 간부전으로 사망했다.

이것은 결코 특별한 사례가 아니었다. 국내 의학계에 보고된 백선으로 인한 독성 간염(toxic hepatitis) 사례는 30건이 훌쩍 넘는다.

백선
백선 / 국립생물자원관

복용을 중단하면 간 기능이 회복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어 간 이식을 받거나 사망에 이른다.

아직 어떤 특정 성분이 치명적인 간독성을 유발하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백선의 무분별한 섭취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의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된 것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식품의약품안전처(MFDS)는 백선을 ‘식품에 사용할 수 없는 원료’로 명확히 지정했다. 이는 단순 권고가 아닌, 식품위생법에 의거해 백선을 식품으로 제조, 판매, 섭취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는 강력한 조치다.

하지만 지금도 온라인에서는 ‘봉삼’ 혹은 ‘봉황삼’이라는 이름으로 차나 담금주 등을 판매하려는 불법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약재 ‘백선피’와 독초 ‘봉삼’, 무엇이 다른가

백선
백선 / 푸드레시피

그렇다면 백선은 아무 쓸모가 없는 식물일까. 그렇지 않다. 전통 한의학에서는 백선의 ‘뿌리 껍질’만을 벗겨내 백선피(白鮮皮)라는 약재로 사용해왔다.

주로 습진, 무좀 등 각종 피부 질환에 바르는 외용제로 쓰거나, 다른 약재들과 함께 극소량을 엄격한 법제에 따라 처방했다. 한약재 시장에서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흔한 약재일 뿐, 전설 속 영약과는 거리가 멀다.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사용 부위’와 ‘용량’에 있다. 전통 의학이 전문가의 처방 아래 ‘껍질’을 ‘소량’ 배합해 사용한 반면, 봉삼 사기극은 일반인이 뿌리 전체, 특히 독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목심(木心)’까지 포함하여 장기간 ‘대량’으로 섭취하도록 부추겼다. 이는 약초를 독초로 둔갑시킨 무지하고 위험천만한 행위였다.

끝나지 않은 위험, 검증되지 않은 믿음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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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 / 푸드레시피

백선이 ‘봉삼’으로 둔갑해 일으킨 비극은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아픈 교훈이다. 아름다운 야생초에 덧씌워진 탐욕이 만들어 낸 신화는 수많은 이들의 건강과 생명을 앗아갔다.

‘봉삼’은 기적의 영약이 아니라 당신의 간을 파괴할 수 있는 치명적인 독초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자연에서 얻는 모든 것이 건강에 이로울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버리고, 반드시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허가된 안전한 정보만을 신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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