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부터 담근 여름 젓갈”… 밴댕이젓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와 맛있게 먹는 법

by 김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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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반찬·찌개·쌈장까지 활용하는 밴댕이젓의 다양한 조리법

밴댕이
그릇에 담긴 밴댕이 / 게티이미지뱅크

여름의 문턱에서 사람들은 흔히 오래 묵혀 깊은 맛을 내는 젓갈을 떠올린다. 하지만 모든 젓갈이 시간의 더께를 입어야만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계절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오롯이 담아낸 제철 젓갈은 그 자체로 귀한 별미로 여겨진다. 그중에서도 1년 중 단 며칠, 초여름의 바다가 인심 쓰듯 내어주는 밴댕이로 담그는 젓갈은 미식가와 어민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특별한 선물이다.

서해안의 어촌에서는 6월이 되면 분주해진다. 바로 이 시기에만 연안으로 몰려드는 밴댕이 떼를 맞이하기 위해서다.

밴댕이
밴댕이 / 게티이미지뱅크

청어과에 속하는 생선인 큰눈정어리(Sardinella zunasi), 즉 밴댕이는 수온이 급격히 오르기 직전, 차가운 물과 따뜻한 물이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에만 모습을 드러낸다.

이 시기를 놓치면 꼬박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하기에, 밴댕이 조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갓 잡은 밴댕이로 빚는 자연의 감칠맛

밴댕이젓
밴댕이젓 / 게티이미지뱅크

공장식 생산 방식으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밴댕이젓의 특징이다. 어민들은 갓 잡은 신선한 밴댕이의 내장을 일일이 손으로 제거한 뒤, 오직 천일염만을 사용하여 손으로 직접 염장한다.

이는 항아리마다 다른 미세한 습도와 염도를 조절하며 최적의 발효 환경을 만들기 위한 장인의 고집이다. 이렇게 정성스레 버무린 밴댕이는 2~3일간의 짧은 숙성을 거쳐 항아리에 담겨 비로소 깊은 맛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밴댕이는 멸치보다 몸집이 작고 살이 연하지만, 젓갈로 발효되는 과정에서 그 어떤 생선과도 비교할 수 없는 깊고 고상한 감칠맛을 낸다. 비린내가 거의 없고 깔끔한 풍미가 특징이다.

밴댕이젓
그릇에 담긴 밴댕이젓 / 게티이미지뱅크

이는 밴댕이 자체가 가진 단백질 분해 효소 덕분인데, 이 효소는 소화를 도울 뿐만 아니라 음식의 풍미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특히 밴댕이에는 뼈 건강에 필수적인 칼슘과 혈행 개선에 도움을 주는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여, 소화력이 약해지는 노년층에게는 맛과 영양을 모두 채워주는 보약 같은 음식이 된다.

조선시대의 지혜, 현대인의 식탁을 사로잡다

밴댕이찌개
밴댕이를 넣은 찌개 / 게티이미지뱅크

밴댕이젓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이 쓴 어류 박물지 자산어보(玆山魚譜) 에는 밴댕이를 ‘소어(蘇魚)’라 칭하며 “맛이 달고 좋아 국을 끓이거나 젓갈을 담그기에 적합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밴댕이의 가치를 알고 식생활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10년대 인천과 서천 지역에서 밴댕이젓을 ‘된장국 젓’ 형태로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은, 이 음식이 특정 지역의 식문화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았는지를 증명한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인의 식탁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밴댕이젓을 즐기는 가장 순수한 방법은 따끈한 밥 위에 한 점 올려 먹는 것이다. 과하게 짜지 않으면서도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감칠맛은 그 자체로 훌륭한 밥반찬이 된다.

밴댕이찌개
밴댕이를 넣은 찌개 /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밴댕이젓의 진정한 가치는 다른 음식과 어우러질 때 드러난다.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끓일 때 멸치 육수 대신 반 스푼만 넣으면, 국물 전체의 맛이 인위적인 느낌 없이 한층 깊고 풍부해진다.

고기 요리와의 궁합은 특히 뛰어나다. 된장과 고추장에 밴댕이젓을 약간 섞어 만든 쌈장은 돼지고기 수육이나 구이의 풍미를 극대화하는 비장의 무기가 된다. 서울의 일부 고급 고깃집에서 특별한 쌈장을 제공하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여름철 입맛을 돋우는 비빔국수 양념장으로도 활용도가 높다. 밴댕이젓에 고추장, 참기름, 다진 마늘, 식초를 섞어 양념장을 만들면, 매콤새콤한 맛에 깊은 감칠맛이 더해져 차원이 다른 국수를 맛볼 수 있다.

이 양념을 응용해 부추나 열무 같은 제철 채소를 가볍게 무쳐내면 즉석에서 근사한 겉절이가 완성된다.

밴댕이
밴댕이 / 게티이미지뱅크

결론적으로 밴댕이젓은 단순한 저장 음식을 넘어, 한 계절의 정수를 담은 식문화 유산이자 현대인의 건강한 식탁을 위한 천연 조미료다. 인공적인 맛에 지친 현대인에게 자연 그대로의 깊은 맛을 선사하며, 요리에 지혜를 더해준다.

이 귀한 젓갈을 제대로 보관하려면 반드시 유리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해야 한다.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산이 용기를 변질시키는 것을 막고, 고유의 향을 오랫동안 지키기 위함이다.

갓 담근 후 3~6개월까지는 생으로 그 부드러움을 즐기고, 시간이 지나 맛이 더욱 깊어지면 각종 찌개나 김치의 양념으로 활용하여 그 가치를 끝까지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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