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 찌고 말려야 효능을 내는 씨앗 ‘토사자’, 정력의 상징이 된 이유

by 한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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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식물 ‘새삼’의 씨앗,
신장과 간을 보하며 양기를 채우는 한의학의 지혜

새삼
새삼 / 국립생물자원관

아홉 번 술에 담가 찌고 아홉 번 햇볕에 말리는 ‘구증구폭(九蒸九曝)’의 정교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최고의 약효를 내는 씨앗이 있다.

뿌리도 잎도 없이 다른 식물에 의존해 살아가는 기생식물 새삼의 씨앗, ‘토사자(菟絲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농작물을 고사시키는 골칫거리 잡초의 씨앗이 이토록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수천 년간 활력의 상징으로 여겨진 이유를 알아본다.

핵심 목표 신장과 간 에너지 보강

새삼 열매
새삼 열매 / 국립생물자원관

한의학에서 토사자는 인체의 근본 에너지를 저장하고 생식 능력을 주관하는 신장(腎)과, 혈액을 저장하고 전신의 기운을 조율하는 간(肝)의 기능을 동시에 보강하는 핵심 약재로 분류된다.

신장은 선천적인 생명력의 근원으로 뼈의 건강과 노화 속도를 관장하며, 간은 원활한 혈액순환과 에너지 대사를 통해 피로 해소와 정서 안정에 기여한다. 토사자는 이 두 장기의 기능을 함께 강화함으로써 신체 전반의 근본적인 활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일시적인 흥분 작용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바탕이 되는 물질적 기초(음기)와 기능적 에너지(양기)를 조화롭게 채우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남성 활력부터 노화 방지까지

새삼 열매
새삼 열매 / 국립생물자원관

신장과 간의 기능이 저하되면 남성의 정력 감퇴, 조루, 무정자증뿐만 아니라 다양한 노화 현상이 나타난다. 허리와 무릎이 시리고 아프며, 쉽게 피로해지고 어지럼증을 느끼거나 시력이 감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토사자는 이러한 전반적인 기능 저하 상태를 개선하는 데 널리 사용되어 왔다. 조선 영조 시대의 농서 ‘증보산림경제’에는 토사자를 활용한 구체적인 무정자증 치료법이 소개될 정도로 그 효능을 인정받았다.

이처럼 토사자는 특정 증상 개선을 넘어 인체의 노화 시계를 늦추고 생명력을 보강하는 종합적인 항노화 약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씨앗의 근원, 기생식물 새삼의 생존법

새삼 열매
새삼 열매 / 국립생물자원관

토사자는 ‘새삼(Cuscuta japonica)’이라는 기생식물의 씨앗이다. 새삼은 스스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엽록소가 전혀 없어 생존에 필요한 모든 양분을 다른 식물로부터 빼앗는다. 땅에서 싹튼 어린 줄기는 숙주 식물을 감지하면 자신의 뿌리를 퇴화시키고, ‘흡기(吸器)’라는 특수한 기관을 숙주의 관다발에 깊숙이 박아 넣는다.

이를 통해 물과 무기질은 물론, 숙주가 광합성을 통해 만든 영양분까지 모두 흡수한다. 조상들은 다른 식물의 생명 에너지를 온전히 흡수해 응축한 것이 바로 토사자 씨앗이라고 믿었으며, 이 강력한 생명력이 인체에 유익하게 작용한다고 보았다.

복용법과 반드시 지켜야 할 주의사항

새삼
새삼 / 국립생물자원관

토사자를 가장 간편하게 섭취하는 방법은 차로 마시는 것이다. 잘 말린 씨앗 12~15g을 물에 넣고 약한 불로 달여서 하루 2~3회에 나눠 마시면 된다. 소주나 청주에 깨끗이 씻어 말린 토사자를 넣고 3개월 이상 숙성시켜 토사자주(酒)로 마시는 방법도 널리 쓰인다.

하지만 약효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통 방식은 ‘구증구폭’과 같은 복잡한 법제 과정을 거친다. 이는 약성을 온화하게 만들고 흡수율을 높이기 위한 지혜다.

다만 토사자는 성질이 따뜻하므로 평소 몸에 열이 많고 얼굴이 붉으며 입이 자주 마르는 사람, 즉 한의학적으로 ‘음허화왕(陰虛火旺)’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복용을 피해야 한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약재가 그렇듯, 전문가와의 상담 없이 임의로 과량 복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다른 식물의 생명을 의지해 살아가는 기생식물 새삼은 그 씨앗인 토사자를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생명 에너지를 보충해 주는 자연의 신비를 보여준다.

농부의 시선으로는 박멸해야 할 잡초지만, 의원의 눈에는 신체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귀한 약재가 된다. 하나의 존재가 지닌 양면성과 그 안에서 이로운 가치를 발견해 낸 선조들의 지혜는, 우리가 세상을 좀 더 다각적으로 바라봐야 할 이유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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