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생선이 왜 여름에?” 어민들도 놀란 ‘도루묵’ 생선의 출현

by 김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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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물고기 ‘도루묵’의 여름 출현
동해 생태계 변화의 신호탄

도루묵
도루묵 / 게티이미지뱅크

찬 바람이 불어야 제맛이라던 겨울의 진객, 도루묵이 이제 한여름의 그물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계절을 잊은 생선의 출현이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동해의 생태 리듬이 무너지고 있다는 강력한 경고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파도가 우리 식탁 가장 가까운 곳까지 밀려왔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식탁 위 낯선 풍경과 ‘도로 목어’가 된 사연

도루묵 구이
도루묵 구이 / 게티이미지뱅크

전통적으로 도루묵의 제철은 알이 꽉 차는 11월에서 12월 사이의 겨울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계절의 경계는 무의미해졌다.

강릉원주대 이충일 교수가 최근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21년 이후 7~8월에도 도루묵이 잡히는 현상이 관측되며 동해안의 연안 환경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살이 부드럽고 맛이 담백해 구이, 조림, 찌개 등 어떻게 먹어도 사랑받는 도루묵은 예로부터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도루묵
양념 된 도루묵 구이 / 게티이미지뱅크

국립수산과학원 식품정보에 따르면, 도루묵은 100g당 약 119kcal로 열량이 낮고 단백질이 풍부하며, 칼슘과 인, 그리고 두뇌 건강에 좋은 오메가-3 지방산(DHA, EPA)을 함유하고 있다.

이 생선에는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유래도 전해진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피난길에서 이 생선을 아주 맛있게 먹고 귀하다는 의미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환궁한 뒤 다시 맛본 생선 맛이 예전 같지 않자, “도로 목어(木魚)라 하라” 즉, 원래 이름인 ‘목어’로 되돌리라고 명해 지금의 ‘도루묵’이 되었다는 것이다.

왕의 입맛에 따라 이름이 바뀌었던 이 생선이, 이제는 인간이 바꾼 기후에 따라 제철마저 바꾸고 있다.

가속화되는 온난화, 동해 생태계의 지각 변동

도루묵
불판에 올린 도루묵 / 게티이미지뱅크

도루묵의 여름 출현은 단독 현상이 아닌, 동해 전체가 겪는 거대한 변화의 일부다.

국립수산과학원의 ‘해양수산분야 기후변화 영향 브리핑 북 2025’에 따르면, 최근 약 57년간(1968~2024년) 우리나라 해역의 표층 수온은 전 지구 평균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특히 동해의 수온은 같은 기간 2.04℃나 올라 서해(1.44℃)와 남해(1.27℃)를 크게 웃돌았다.

이러한 급격한 수온 상승은 동해의 어류 지도를 완전히 새로 그리고 있다. 동해의 터줏대감이었던 명태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고, 한때 국민 생선이었던 살오징어의 어획량은 급감하여 ‘금징어’가 되었다.

도루묵 회
깻잎에 올린 도루묵 회 / 푸드레시피

이들의 빈자리는 제주도 인근에서 주로 잡히던 방어, 삼치와 같은 난류성 어종들이 채우고 있다. 이 교수가 지적한 대로, 1970년대 연간 1천 톤에 불과했던 방어류 어획량이 최근 1만 톤에 육박하게 된 것은 바다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루묵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생물(Indicator species)’ 이다.

수온에 매우 민감한 도루묵은 자신에게 맞는 수온대를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산란 시기와 회유 경로를 이탈하고 있으며, 이 결과가 바로 ‘여름 도루묵’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도로묵’이 되지 않기 위한 우리 식탁의 과제

도루묵 찜
도루묵 찜 / 게티이미지뱅크

한때 맛이 변했다고 하여 ‘도로 목어’가 되었던 도루묵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다른 의미의 질문을 던진다. 기후변화로 인해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되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충일 교수는 “이러한 온난화 추세가 계속된다면 2050년에는 현재보다 어종의 다양성이 현저히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겨울 도루묵의 실종과 여름 도루묵의 등장은 단순히 계절의 별미 하나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 바다의 생태계가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신호이며, 안정적인 수산자원 공급망과 우리의 식문화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예고다.

이제 우리는 식탁 위에 올라온 낯선 계절의 생선을 통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지속가능한 바다를 위한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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