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 완화부터 여름 보양 반찬까지, 채취가 까다로운 약초 ‘고본’ 이야기

여름이 깊어진 숲, 축축한 이끼와 부엽토 사이로 붉은 기운을 띤 줄기가 솟아있다. 진한 향기의 근원을 따라 조심스레 땅을 파내면 단단하고 연갈색을 띤 뿌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미나리과(Apiaceae)의 다년생 식물인 ‘고본’이다.
뿌리에 상처를 내면 흘러나오는 하얀 유액과 독특한 향은 이 식물이 품은 강한 생명력을 짐작하게 한다.
고본은 예로부터 귀한 약재로 대접받았다. 인공 재배가 거의 불가능해 오직 깊은 산 그늘진 곳에서만 자생하며, 그 개체 수가 많지 않아 높은 가치를 지녀왔다.
하지만 오늘날 이 식물의 가치는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위협하는 칼날이 되고 있다. 약효를 좇는 무분별한 채취가 자생지를 파괴하며, 이 귀한 식물을 우리 곁에서 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뿌리에 담긴 전통의 지혜와 과학

민간에서 고본은 ‘두통 잡는 뿌리’로 명성이 자자했다. 전통적으로 감기, 코막힘, 특히 편두통이 있을 때 뿌리를 달여 마시거나 차로 우려먹는 지혜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러한 경험적 효능은 현대 과학을 통해 그 원리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고본의 뿌리에는 쿠마린(Coumarin), 리그난(Lignan), 플라보노이드(Flavonoid) 계열의 화합물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현대 약리학 연구에 따르면, 쿠마린 계열 성분은 혈관을 이완시키고 혈액 순환을 촉진하며 강력한 항염 및 항균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고본이 혈관성 두통이나 염증성 질환 완화에 사용된 전통적 용도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어린잎을 데쳐 쌉싸름한 맛을 즐기는 반찬으로 활용하거나 뿌리를 튀김, 약선 요리에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 쓰임은 약용이 주를 이룬다.
다만 약효 성분이 농축된 만큼 섭취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빈속에 다량 섭취 시 속쓰림을 유발할 수 있으며, 특히 전문가의 지식 없이 야생에서 유사 식물을 채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고본이 속한 미나리과에는 독미나리 등 맹독성 식물이 많아 비전문가가 오인할 경우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위기의 뿌리, 보존이 시급한 이유

문제는 고본의 약용 가치가 알려지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이것이 남획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본은 한번 뿌리를 캐내면 식물 전체가 고사하고, 같은 자리에서 다시 자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산림청과 국립수목원 등 관련 기관에서는 고본을 희귀식물로 지정하고 자생지 보존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특정 자생지에서 반복적으로 채취가 이루어질 경우 불과 3년 안에 군락 전체가 자생력을 잃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일부 약초 시장이나 온라인을 통해 건조된 고본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지만, 이는 자생지의 희생을 대가로 한 것일 수 있다. 고본은 단순히 약초를 넘어, 토양의 습도를 유지하고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는 중요한 구성원이다.
일부 지자체와 환경 단체들이 고본 자생지 보호 구역을 설정하고 복원 사업에 나서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고본을 발견했을 때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채취가 아닌 관찰과 보호다. 이 식물의 진정한 가치는 뿌리를 캐내어 내 몸을 이롭게 하는 것을 넘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는 데 있다.
꼭 필요한 경우, 정식으로 허가받은 농가나 약초상을 통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된 것을 구매하는 윤리적 소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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