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마약 아니야?” 해외 공항 검색대서 직원 4명이 둘러싸 캐묻던 겨울 간식의 ‘하얀 가루’

by 김혜은 기자

댓글 0개

입력

곶감 공항서 마약 의심
하얀 가루 정체는 천연 당분

곶감
곶감 / 게티이미지뱅크

해외로 곶감을 가져가려다 공항 검색대에서 곤란을 겪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표면을 덮은 하얀 가루가 특정 물질처럼 보여 보안 요원이 의심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 여행객은 검색대 직원 4명에게 둘러싸여 하얀 가루의 정체를 설명하는 영어 문서를 요구받았고, 위키피디아 설명을 보여준 뒤에야 풀려났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보안 요원이 곶감을 계속 찍어 먹으며 확인했다는 사연도 전해진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겨울 간식이지만, 서양에서는 낯선 과일이기에 생기는 일이다. 그 배경을 살펴봤다.

과당·포도당 결정화된 자연 성분

곶감
곶감 / 게티이미지뱅크

곶감에 나타나는 하얀 결정은 과육 속 당분이 건조 과정에서 밖으로 굳어 형성된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이 하얀 가루는 시상(柹霜)이라 부르며 과당과 포도당이 응고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흔적이다.

곶감을 만들 때 감을 박피한 후 16~35일간 건조하는데, 이 과정에서 과육 내부의 당분이 수분과 함께 표면으로 이동하면서 결정화되는 셈이다.

시상은 자연 성분이므로 먹어도 전혀 문제없다. 오히려 곶감의 깊은 단맛을 더해주는 요소이며, 시상이 많을수록 오래 건조된 고품질 곶감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 하얀 가루가 공항 보안 검색대에서는 마약으로 오해받기 쉽다. 이 덕분에 곶감을 해외로 가져갈 때는 영문 설명서를 준비하거나, 식품의약품안전처 블로그 같은 공식 자료를 스마트폰에 저장해두는 게 좋다.

동아시아 원산 과일

말리는 감
말리는 감 / 게티이미지뱅크

감은 동아시아에서 먼저 정착한 작물이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2세기경 재배 기록이 있으며,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인 1138년 고욤 기록이 최초 문헌으로 남아 있다.

한국·중국·일본에서는 기원전 3~4천년경부터 감을 여러 형태로 먹어왔지만, 서양으로 전파된 건 19세기 후반이다. 미국에는 1856년 일본에서 감나무 씨가 전달되었고, 1870년부터 1919년 사이 캘리포니아에 본격적으로 식재되었다. 유럽에는 1890년대 브라질과 남부 유럽 지역에 도입되었다.

감이 서양에서 대중화되지 않은 이유는 보존과 유통의 어려움 때문이다. 감은 수확 후 호흡을 하면서 성숙·숙성·노화 과정을 거치는데, 후숙이 빠르고 물러지기 쉬운 특성이 있어 상태 관리가 까다롭다.

반면 서양 과일 시장은 사과·오렌지·바나나처럼 장기 저장과 유통이 용이한 과일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감은 관리가 까다로워 인지도가 낮은 채로 남았다.

최근 들어 웰빙 열풍과 SNS 확산으로 영국·미국 등에서 감과 곶감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보도도 있지만, 여전히 시장 규모는 작은 편이다.

항산화·탄닌·루틴 풍부

곶감
곶감 / 게티이미지뱅크

감은 과육·껍질·잎에 퍼져 있는 항산화 성분으로 건강 효능이 뛰어나다. 비타민 A와 C, 베타카로틴, 폴리페놀(탄닌), 카로티노이드(라이코펜·루테인) 등이 풍부하며, 중앙대와 농촌진흥청 연구에 따르면 감 껍질의 항산화 성분은 과육보다 최대 3배 높다. 이는 활성산소 흐름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탄닌은 기름진 음식을 먹은 뒤 속이 편안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며, 항산화·혈압 저하·콜레스테롤 개선·항균 작용, 소화기 보호·숙취 해소 효과도 보고되어 있다.

다만 과도하게 먹으면 변비를 유발할 수 있어 적당량 섭취가 중요하다. 감잎에는 루틴이라는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모여 있는데, 이는 모세혈관을 강화하고 혈류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이 덕분에 감잎을 차로 우려 마시는 방법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으며, 면역 증진과 혈압 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다수 존재한다.

한국만의 독특한 감 문화

감말랭이
감말랭이 /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에서는 한 가지 과일로 다양한 먹거리를 만들어낸다. 아삭하게 먹는 단감, 숟가락으로 떠먹는 홍시, 차갑게 얼려 먹는 냉동 홍시, 쫀득한 감말랭이, 깊은 단맛이 배어드는 곶감까지 모두 감에서 파생된 형태다.

예전에는 떫은 감 품종이 많아 생으로 먹기 어려웠기 때문에 탈삽 과정이나 말리는 기술이 자연스럽게 발전했다. 떫은감은 탄닌이 수용성으로 존재해 입안을 떫게 만드는데, 건조하거나 숙성시키면 탄닌이 불용성으로 변하면서 떫은맛이 사라지고 단맛만 남게 된다.

곶감 제조는 박피 후 16~35일간 천일이나 열풍으로 건조하는 과정을 거치며, 온도와 습도, 통풍을 세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곶감
곶감 / 게티이미지뱅크

이렇게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곶감은 시상이 풍부하게 생기면서 깊은 단맛과 쫀득한 식감을 갖추게 된다. 반면 서양에서는 감을 단순히 신선 과일로만 소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한국처럼 다양한 형태로 가공하는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곶감 표면의 하얀 가루는 마약이 아니라 과당과 포도당이 결정화된 시상이다. 감은 동아시아 원산으로 한국에서는 기원전부터 다양한 형태로 가공해 먹어왔지만, 서양에는 19세기 후반에야 전파되어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이 때문에 해외 공항 검색대에서 오해를 받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해외로 곶감을 가져갈 때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블로그나 영문 위키피디아 설명을 준비해두면 도움이 된다. 항산화 성분과 탄닌, 루틴이 풍부한 건강 식품이라는 점을 당당히 설명하고, 필요하면 보안 요원에게 맛을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의 독특한 감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기회로 삼아보자.

전체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