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근대 등 일부 녹색 채소
철분 흡수 방해해 빈혈 악화시킬 수도

건강을 위해 매일 챙겨 먹는 녹색 채소가 오히려 철분 결핍을 심화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 샐러드, 쌈, 나물 등 건강 식단의 대명사로 불리는 일부 채소들이 체내 철분 흡수를 방해하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타민과 섬유질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조건에서는 빈혈 증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식물성 식품에 함유된 철분은 대부분 ‘비헤므철(Non-heme iron)’ 형태다.
이는 육류나 생선에 풍부한 ‘헤므철(Heme iron)’ 대비 체내 흡수율이 현저히 낮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비헤므철의 생체이용률은 동물성 철분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칠 수 있다.
옥살산과 피틴산, 철분 결합해 흡수 차단

문제는 일부 채소에 함유된 ‘항영양소(Antinutrients)’다. 대표적인 성분이 시금치에 다량 함유된 옥살산(Oxalic acid)이다. 옥살산은 강력한 킬레이트제(chelator)로 작용해, 소화 과정에서 철분 이온과 강력하게 결합한다.
이렇게 형성된 ‘옥살산철’은 불용성 염(salt)이 되어 체내에 흡수되지 못하고 그대로 배출된다. 무청(시래기)에 풍부한 피틴산(Phytic acid) 역시 마찬가지다. 피틴산의 인산염 그룹은 철분, 아연, 칼슘 등 주요 미네랄과 단단히 결합해 불용성 복합체를 형성, 이들 미네랄의 생체 이용률을 크게 떨어뜨린다.
채식 위주 식단 시 철분 결핍 위험 증가

이러한 철분 흡수 방해 현상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건강한 사람이 일반적인 양을 섭취할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철분 결핍성 빈혈을 겪고 있거나, 육류 섭취가 극히 적은 채식주의자에게는 민감하게 작용한다.
철분 공급원 자체가 식물성 식품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항영양소가 그마저의 흡수율을 더욱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철분 부족이 지속되면 단순한 피로감을 넘어 손발이 차가워지는 수족냉증, 집중력 저하, 어지럼증 등이 동반될 수 있다.
특히 가임기 여성이나 성장기 청소년처럼 철분 요구량이 높은 집단은 식물성 철분원에만 의존할 경우, 섭취량 대비 실제 흡수량이 부족해지기 쉽다.

항영양소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조리법 개선이 필수적이다. 옥살산과 피틴산은 대부분 수용성이므로, 시금치나 무청 등은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찬물에 헹궈내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상당량의 옥살산과 피틴산을 제거할 수 있다. 또한 무청 시래기의 경우, 조리 시 두부나 달걀 등 단백질 식품을 곁들이면 영양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된다. 철분 흡수율을 높이는 영양소를 함께 섭취하는 것도 현명하다.
비타민 C가 풍부한 피망, 레몬즙, 오렌지 주스 등은 비헤므철을 흡수하기 쉬운 형태로 전환시켜 흡수율을 높인다. 식물성 철분은 공복보다는 식사와 함께 섭취할 때 흡수율이 개선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우유나 치즈 등 유제품의 칼슘은 철분과 흡수 경로에서 경쟁하므로, 시금치 요리와 동시에 섭취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근대의 질산염, 산소 운반 능력 저하 가능성

근대는 엽산과 칼륨이 풍부하지만, 옥살산과 함께 질산염(Nitrate) 함량이 높은 채소다. 질산염 자체는 무해하지만, 체내 박테리아에 의해 아질산염으로 환원될 수 있다.
이 아질산염은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의 철(Fe2+)을 산화시켜 산소와 결합할 수 없는 메트헤모글로빈(Fe3+)으로 바꾼다. 이는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을 떨어뜨려 피로와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근대 역시 날로 먹기보다 데친 후 물에 헹궈 질산염을 줄여 섭취해야 한다.
양배추의 비타민 K, 특정 환자 주의 필요

위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양배추도 주의가 필요하다. 양배추에는 철분 흡수를 방해하는 폴리페놀계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생양배추를 즙으로 과다 섭취하면 위산 분비가 줄어들 수 있는데, 철분은 강한 위산 환경에서 이온화되어야 흡수가 용이하므로 위산 부족은 철분 흡수 저하로 이어진다.
특히 양배추에 풍부한 비타민 K는 혈액 응고를 돕는 성분이다. 이 때문에 와파린(Warfarin) 등 항응고제를 복용하는 심혈관 질환 환자는 양배추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비타민 K는 항응고제의 작용을 방해하므로, 약물 효능 유지를 위해 섭취량에 대한 의료진 상담이 필요할 수 있다. 양배추는 살짝 익히거나 김치처럼 발효시켜 먹으면 항영양소가 줄고 소화 흡수율이 높아진다.
시금치, 근대, 무청, 양배추는 분명 건강상 이점이 많은 채소다. 하지만 철분 흡수라는 측면에서는 항영양소의 존재를 인지하고 섭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특정 채소를 과다 섭취하기보다 다양한 식품을 골고루 먹고, 특히 빈혈 위험군이라면 데치거나 발효하는 조리법을 적극 활용하며 비타민 C를 곁들이는 식습관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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