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못 봐요”… ‘합대나물’ 사라진 이유, 대기오염이 부른 환경 경고

by 김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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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오염에 취약한 합다리나무의 생태와 쌉싸름한 추억의 맛

합다리나무
합다리나무 잎 나물 / 푸드레시피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남부지방의 봄 식탁에는 특별한 나물 하나가 오르곤 했다. 두릅처럼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쌉싸름하면서도 고소한 감칠맛이 입안 가득 퍼지던 ‘합대나물’.

하지만 언젠가부터 시장에서도, 산기슭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한때 우리 곁에서 봄을 알리던 친숙한 나물은 어째서 이제는 ‘환상의 나물’이라 불리며 기억 속의 맛이 되었을까.

그 이유를 추적하는 것은 사라진 한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우리 환경의 변화를 되돌아보는 여정이기도 하다.

학의 다리를 닮은 남쪽의 나무, 합다리나무

합다리나무
합다리나무 / 국립생물자원관

합대나물은 합다리나무의 어린 순을 일컫는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나도밤나무과에 속하는 이 낙엽 활엽수는 매끈한 회갈색 수피와 곧게 뻗은 가지의 모습이 마치 학의 다리를 닮았다 하여 ‘합다리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주로 전라남북도, 경상남도 등 따뜻한 남부지방의 양지바른 산기슭에서 자라며 최대 20m까지 크게 자랄 수 있다.

이른 여름인 6월경에는 가지 끝에 수많은 흰색 꽃이 원추꽃차례로 피어나 장관을 이루고, 가을이면 그 진가가 다시 한번 드러난다.

붉은 심장 모양의 아름다운 열매 주머니가 열리면서 그 안에 품고 있던 까맣고 윤기나는 씨앗들을 내보이는 모습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 열매와 씨앗은 새와 곤충들의 귀중한 양식이 되어주며 숲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한다.

까다로운 환경,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식재료

합다리나무
합다리나무 / 국립생물자원관

아름다운 모습과 독특한 맛을 지녔음에도 합다리나무가 우리 곁에서 멀어진 이유는 그 까다로운 생육 조건에 있다.

합다리나무는 깨끗한 환경에서만 자라는 대표적인 환경지표종중 하나로, 대기오염에 매우 취약하다. 산업화로 인한 환경 변화는 합다리나무의 서식지를 급격히 위축시켰다.

여기에 번식의 어려움도 개체 수 감소를 가속했다. 합다리나무는 씨앗의 껍질이 두껍고 단단해 발아율이 매우 낮으며, 꺾꽂이(삽목) 성공률 또한 현저히 떨어져 인공적인 증식이 쉽지 않다.

결국 오염에 약하고 번식은 어려운, 이중고를 겪으며 우리 주변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쌉쌀하고 고소했던 추억의 맛, 합대나물

합다리나무
초고추장에 찍는 합다리나무 잎 / 푸드레시피

기억 속 합대나물은 봄나물의 왕이라 불리는 두릅과 비슷한 방식으로 조리되었다. 갓 돋아난 연한 순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쌉싸름한 맛을 부드럽게 만든 뒤,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 가장 대중적인 방법이었다.

쌉쌀함 뒤에 찾아오는 고소한 감칠맛은 봄철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 주기에 충분했다.

이 외에도 된장이나 간장 양념에 조물조물 무쳐 나물 무침으로 먹거나, 밀가루나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내면 아이들도 좋아하는 별미 간식이 되었다. 짭조름한 장아찌로 담가두면 일 년 내내 그 독특한 풍미를 즐길 수도 있었다.

전통적 활용과 섭취 시 유의점

합다리나무
합다리나무 잎 / 푸드레시피

민간에서는 합다리나무의 어린 순인 합대나물이 소화를 돕고 이뇨 작용을 촉진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명확한 과학적, 임상적 근거가 뒷받침된 효능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활용 사례에 가깝다.

오히려 섭취 시에는 다른 산나물과 마찬가지로 과다 섭취를 주의해야 한다. 풍부한 식이섬유는 적당량 섭취 시 장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을 먹으면 오히려 복통이나 소화 불량을 유발할 수 있다.

합다리나무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종류의 나물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환경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하나의 경고등과 같다.

식탁 위에서 사라진 하나의 나물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과 우리가 숨 쉬는 공기가 보내는 침묵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추억 속 쌉싸름한 그 맛을 되새기는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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