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남은 음식이었을 뿐인데…지금은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나초’의 탄생 비밀

by 김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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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된 세계적 간식의 역사

나초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1943년 멕시코의 국경 도시 피에드라스네그라스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주방에 남은 토르티야 몇 장과 치즈, 할라피뇨가 전부였던 상황에서 한 직원의 기지가 발휘되어 탄생한 즉흥 요리가 오늘날 전 세계인이 즐기는 ‘나초’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요리는 단순한 간식을 넘어, 한 시대의 문화 아이콘이자 전 세계의 식문화를 담아내는 캔버스로 진화했다.

한 남자의 애칭이 된 요리, 이그나시오 ‘나초’ 아냐야

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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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초의 탄생 비화는 멕시코 코아우일라주 피에드라스네그라스에 위치한 빅토리 클럽 레스토랑에서 시작된다. 당시 레스토랑의 지배인이었던 이그나시오 ‘나초’ 아냐야(Ignacio ‘Nacho’ Anaya)는 주방장이 퇴근한 늦은 저녁, 미국 텍사스 이글패스에 거주하던 미군 장교의 부인들을 손님으로 맞았다.

마땅한 요리 재료가 없던 그는 주방에 남아있던 옥수수 토르티야를 삼각형으로 잘라 튀긴 뒤, 그 위에 위스콘신산 체더치즈와 할라피뇨 피클을 얹어 오븐에 데워 제공했다.

이 새로운 요리에 매료된 손님들이 음식의 이름을 묻자, 그는 자신의 애칭을 따 ‘나초스 에스페시알레스(Nacho’s Especiales)’, 즉 ‘나초의 특별 요리’라고 답했다. 이 이름은 곧 ‘나초(Nachos)’로 줄여 불리며 멕시코와 텍사스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간식에서 한 끼 식사로, 로디드 나초의 등장

나초 소스
나초 소스 / 게티이미지뱅크

초기의 나초는 토르티야 칩, 녹인 치즈, 할라피뇨 단 세 가지 재료로 구성된 소박한 형태였다. 하지만 이 요리가 미국으로 넘어가 텍스멕스(Tex-Mex) 요리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폭발적인 진화를 겪었다.

1976년 미국 텍사스 알링턴 스타디움에서 처음으로 대중적인 구장 간식으로 판매되기 시작하며 인지도를 높였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토핑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다진 소고기, 칠리 콘 카르네, 강낭콩, 양파, 토마토, 올리브 등이 더해지며 나초는 점차 풍성해졌다. 여기에 살사, 과카몰리, 사워크림 같은 소스가 곁들여지면서, 한 접시만으로도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되는 ‘로디드 나초(Loaded Nachos)’ 스타일이 완성되었다.

완벽한 나초를 구성하는 맛의 황금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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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나초의 비결은 각 재료가 만들어내는 맛과 식감의 조화에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토르티야 칩은 옥수수 본연의 고소한 맛이 살아있고, 토핑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해야 한다.

치즈는 낮은 온도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몬터레이 잭이나 체더 치즈가 주로 사용되어 고소한 지방의 맛과 쫀득한 식감을 더한다.

여기에 할라피뇨의 매콤함과 살사 소스의 산미가 더해져 기름진 맛의 균형을 잡아주고, 과카몰리와 사워크림이 부드럽고 시원한 맛을 더해 전체적인 풍미를 완성한다. 이처럼 바삭함, 부드러움, 고소함, 매콤함, 상큼함이 한입에 어우러지는 것이 잘 만든 나초의 특징이다.

전 세계를 여행하는 나초의 변신

나초
나초 / 게티이미지뱅크

나초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각국의 식문화와 만나 독창적인 형태로 재탄생했다. 미국 남부에서는 바비큐 소스에 버무린 풀드 포크를 올린 ‘BBQ 나초’가 인기가 높다.

아일랜드의 펍에서는 토르티야 칩 대신 감자튀김이나 웨지 감자를 사용하는 ‘아이리시 나초’를, 하와이에서는 칼루아 포크와 파인애플을 올린 하와이안 나초를 맛볼 수 있다.

심지어 시나몬 설탕을 뿌린 칩에 초콜릿 소스와 과일을 곁들인 ‘디저트 나초’까지 등장하며 그 변신의 한계를 없애고 있다.

이그나시오 아냐야의 소박한 즉흥 요리에서 시작된 나초는 지난 80여 년간 국경을 넘어 진화하며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단순한 간식을 넘어 각 지역의 식문화와 창의성을 담아내는 휼륭한 캔버스가 된 나초의 변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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