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질병으로 인한 꿀벌 군집 붕괴 위기 속
주요 밀원식물 대안으로 부상한 토끼풀의 생태적 가치와 역할

우리의 식탁이 조용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수년째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꿀벌 군집 붕괴 현상이 올해도 계속되면서, 인류의 주요 식량 생산에 경고등이 켜졌다.
사과, 배, 양파, 당근 등 우리가 먹는 농작물의 상당수가 꿀벌의 수분 활동에 의존하는 만큼, 꿀벌의 실종은 곧 식량 안보의 위기와 직결된다.
한때 벌통 하나에 15만 원 선이던 화분매개용 꿀벌 가격은 20만 원을 훌쩍 넘어서며 농가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상 이변만의 문제가 아니다. 복잡하게 얽힌 여러 요인이 꿀벌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조용한 재앙, 꿀벌은 왜 사라지나

꿀벌의 실종은 어느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재앙이다. 첫째, 기후변화로 인한 급격한 기온 변동은 꿀벌의 면역력을 약화시켜 집단 폐사로 이어진다.
둘째,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위협으로 꼽히는 꿀벌응애(Varroa destructor)는 꿀벌에 기생하며 체액을 빨아먹고, 각종 바이러스를 옮기는 치명적인 매개체다.
셋째, 특정 살충제 성분인 네오니코티노이드는 꿀벌의 신경계를 교란해 귀소 능력을 떨어뜨리고 번식에 악영향을 준다. 마지막으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먹이 부족이다.
국내 양봉 산업의 기반이었던 아까시나무 군락이 노령화되고 기후변화로 개화 기간이 짧아지면서, 꿀벌이 꿀과 꽃가루를 얻을 밀원식물(Nectar plant) 자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 총체적 난국 속에서, 과거 잡초로만 여겨지던 식물이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잡초에서 희망으로, 토끼풀의 재조명

위기의 생태계에 놀라운 해답을 제시한 것은 바로 우리 발밑의 흔한 풀, 토끼풀(White Clover, Trifolium repens)이다.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만 내리면 왕성하게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과 번식력 덕분에 오랫동안 골칫거리 잡초 취급을 받아왔지만, 그 속에는 생태계를 되살리는 강력한 힘이 숨어있다.
토끼풀의 가장 큰 가치는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능력에 있다. 토끼풀의 뿌리에는 뿌리혹박테리아(Rhizobium)가 공생하는데, 이 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형태(암모니아)로 바꾸는 ‘질소 고정’ 작용을 한다.
이는 화학 비료 사용을 줄여 토양 오염을 막고 땅심을 높이는 천연 비료 역할을 하는 셈이다. 촘촘하게 땅을 뒤덮는 특성은 경사지의 토양 유실을 막는 효과적인 지표 식물이 되어주기도 한다.
지속가능한 농업의 파트너, 기술과 만나다

이러한 토끼풀의 잠재력에 주목한 한국농업기술진흥원(KOAT)은 이를 활용한 혁신적인 농업 기술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바로 과수원이나 저수지 비탈면 등에 토끼풀을 심어 땅을 덮는 ‘초생재배’ 기술이다.
이 방식은 다양한 이점을 제공한다. 첫째, 토끼풀이 다른 잡초의 성장을 억제하는 ‘살아있는 멀칭’ 역할을 해 제초제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둘째, 앞서 설명한 질소 고정 작용으로 토양의 비옥도를 높인다.
셋째, 꿀벌에게는 연중 꾸준히 꿀과 꽃가루를 공급하는 핵심 밀원식물이 되어준다. 나아가 대기 중의 탄소를 토양에 저장하여 기후변화 완화에도 기여한다.

이미 몇몇 농업 벤처기업은 이 기술을 도입해 비용 절감과 친환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으며, 농업기술진흥원은 재배 면적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꿀벌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곤충 하나를 보호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식탁의 풍요로움과 생태계 전체의 건강이 걸린 절박한 과제다.
기후 위기 시대에 토끼풀처럼 우리가 하찮게 여겼던 존재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것은, 이제는 농업의 패러다임이 생산성 중심에서 지속가능성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때로는 가장 거대한 문제의 해답이 가장 가까운 곳, 우리 발밑의 작은 생명에 숨어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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