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제주에서 꼭 먹어야 할 자리돔, 물회부터 축제까지 즐기는 법

by 김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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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름을 알리는 자리철, 자리돔의 정체

자리돔
바닷속 자리돔 / 게티이미지뱅크

여름의 문턱에서 제주 바다가 가장 먼저 내어주는 선물은 단연 자리돔이다. 언뜻 보기에 손바닥만 한 크기와 투박한 생김새로 그 가치를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이 작은 생선에 담긴 맛과 이야기는 제주 여름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5월부터 시작되는 ‘자리철’이 오면, 제주 사람들은 시원한 자리물회 한 그릇으로 여름을 맞이할 채비를 한다. 이는 단순한 계절 음식을 넘어, 세대의 기억과 제주의 자연을 오롯이 품은 하나의 문화다.

여름의 전령, 제주 자리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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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돔 / 국립생물자원관

표준명 자리돔, 학명 Chromis notata인 이 물고기를 제주에서는 예로부터 ‘자리’라 불러왔다. 주로 수심이 얕은 암반 지대에 무리 지어 서식하며, 낮에는 바위틈에 숨어 있다가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어종이다.

이 때문에 낚시로는 잡기 어렵고, ‘들망’이라는 전통적인 그물을 이용해 물살이 잔잔한 곳으로 몰아 한 번에 떠내는 방식으로 어획이 이루어진다. 5월에서 7월은 자리돔의 산란기로, 살이 가장 단단하고 기름져 맛이 절정에 이른다.

이 시기 제주 어촌 마을 골목골목을 누비는 활어 트럭의 확성기 소리는 곧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자리돔
자리돔 / 국립생물자원관

자리돔 요리의 대표 주자는 단연 자리물회다. 갓 잡은 자리돔을 뼈째 얇게 썰어 된장을 푼 얼음 육수에 각종 채소와 함께 말아내는 이 음식은 제주의 여름을 상징한다.

뼈째 씹히는 독특한 식감과 매콤새콤한 양념, 그리고 시원한 국물이 어우러져 더위에 지친 입맛을 단번에 끌어올린다.

특히 양념에 들어가는 식초는 신맛을 더할 뿐 아니라, 생선 속 칼슘의 흡수를 돕고 잔뼈를 부드럽게 만드는 연육 작용을 해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과학적 지혜가 담겨있다.

신선도가 생명인 탓에 쉽게 상하고 비린내가 나기 쉬워, 자리돔은 예부터 제주도를 벗어나기 힘든 대표적인 로컬푸드로 여겨져 왔다.

구이부터 젓갈까지, 버릴 것 없는 쓰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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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돔 구이 / 푸드레시피

자리돔의 활용은 물회에서 그치지 않는다. 살이 단단하고 지방이 적어 담백한 자리구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소금을 살짝 뿌려 바싹 구워내면 뼈와 가시까지 과자처럼 바삭하게 씹히고, 그 속에서 배어 나오는 은은한 바다의 풍미가 일품이다.

제주 현지에서는 된장을 푼 국물에 자작하게 조려 먹기도 하는데, 이는 구수한 된장 맛이 자리돔의 감칠맛을 한층 끌어올리는 지혜로운 조합이다.

“여름철 자리물회를 다섯 번 먹으면 보약이 따로 없다”는 제주 속설은 영양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자리돔
자리돔 회 / 푸드레시피

실제로 국립수산과학원 등에 따르면 자리돔은 뼈째 먹는 생선답게 칼슘 함량이 매우 풍부하며, 양질의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 또한 많아 여름철 기력 회복과 뼈 건강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시간의 맛을 담은 자리젓은 자리돔의 또 다른 얼굴이다. 소금에 절여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거나 저온에서 숙성시킨 자리젓은 강렬한 짠맛과 깊은 감칠맛으로 이름난 ‘밥도둑’이다.

잘 익은 자리젓 한 점을 따뜻한 밥에 올리거나 상추쌈에 곁들이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다. 제주 사람들은 이 젓갈을 다져 양념으로 만들어 비빔밥을 해먹는 등 다양하게 활용하며 오랜 시간 그 맛을 즐겨왔다.

세대를 잇는 맛, 보목 자리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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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돔 / 국립생물자원관

이처럼 제주인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자리돔은 매년 5월, 서귀포시 보목포구에서 열리는 ‘보목자리돔축제’를 통해 그 가치를 다시 한번 빛낸다.

이 축제는 단순히 먹거리를 즐기는 행사를 넘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손주 손을 잡고 찾는’ 세대 통합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축제 기간 동안 방문객들은 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시원한 자리물회를 맛볼 수 있으며, 아이들의 입맛을 겨냥해 개발한 ‘돈까스 덮은 자리’와 같은 현대적인 메뉴도 만날 수 있다.

축제의 백미는 직접 참여하는 체험 프로그램에 있다. 자리돔 맨손 잡기, 왕보말 잡기, 카약 체험 등은 제주 바다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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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자리돔 / 게티이미지뱅크

또한, 플라스틱 병뚜껑을 재활용하는 업사이클링 체험이나 해안가를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행사를 통해 축제를 즐기면서 환경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시간도 마련된다.

어린이 풍물패 공연부터 할머니들의 갈옷 멋쟁이 선발대회까지, 무대 위에서는 모든 세대가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펼쳐진다.

이렇듯 자리돔은 제주라는 섬의 자연환경과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가 빚어낸 소중한 음식 문화유산이다.

작은 생선 한 마리에 담긴 시원한 맛과 풍부한 영양, 그리고 세대를 잇는 따뜻한 이야기는 올여름, 우리가 제주를 찾아야 할 또 하나의 분명한 이유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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