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풀이 조의 조상입니다”… 길가 잡초에 숨겨진 인류 생존의 역사

by 한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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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유적서도 발견된 씨앗,
쌀 대신 밥 지어 먹고 약으로도 썼던 강아지풀의 재발견

강아지풀
강아지풀 / 국립생물자원관

잡곡밥에 섞여 톡톡 터지는 식감을 더하는 ‘조’와 길가 공터에서 흔들리는 ‘강아지풀’은 어떤 관계일까. 정답은 ‘조상이자 후손’이다. 우리에게 추억 속 잡초로만 알려진 강아지풀은 사실 인류가 가장 오래전부터 재배해 온 작물 중 하나인 조의 야생 원종이다.

수천 년 전 한반도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도 발견될 만큼, 강아지풀은 인류의 생존과 함께해 온 매우 중요한 식량 자원의 시작점이었다.

고대인의 주식에서 구황작물까지

강아지풀
강아지풀 / 국립생물자원관

강아지풀의 학명은 ‘세타리아 비리디스(Setaria viridis)’이며, 인류가 이를 식용에 적합하도록 오랜 시간 육종한 것이 바로 ‘조(Setaria italica)’다. 조는 쌀이나 보리와 달리 척박하고 건조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며 생육 기간이 짧아 초기 농경 사회에 매우 이상적인 작물이었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벼농사가 정착하기 이전부터 조가 핵심적인 주식 역할을 담당했다. 시대가 흘러 쌀이 주식이 된 후에도 조의 중요성은 여전했다.

극심한 가뭄이나 재해로 쌀 수확이 불가능해지면, 조는 굶주림을 해결해 주는 가장 중요한 구황작물(救荒作物)이 되었다. 사람들은 쌀이 부족하면 좁쌀을 섞어 밥을 지어 양을 늘렸고, 좁쌀만으로 죽을 쑤어 허기를 달래며 힘든 시기를 견뎌냈다.

현대 영양학이 재발견한 가치

좁쌀
그릇에 담긴 좁쌀 / 게티이미지뱅크

과거에 생존을 위해 먹었던 조는 현대 영양학의 관점에서 그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의 국가표준식품성분표에 따르면, 좁쌀 100g은 우리가 주식으로 삼는 백미보다 단백질, 식이섬유, 그리고 각종 무기질 함량이 월등히 높다.

특히 현대인에게 부족하기 쉬운 식이섬유는 장의 연동 운동을 촉진하고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것을 막아준다. 또한 에너지 대사와 근육 기능에 필수적인 마그네슘, 나트륨 배출을 돕는 칼륨 등의 무기질도 풍부해 흰쌀밥 위주의 식단에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는 훌륭한 대안이 된다.

동의보감이 기록한 약재 ‘속미’

강아지풀
강아지풀 / 국립생물자원관

조의 가치는 식량을 넘어 약용으로도 이어졌다. 조선 시대 의학서 ‘동의보감’에서는 조의 쌀, 즉 좁쌀을 ‘속미(粟米)’라는 약재명으로 기록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속미는 성질이 약간 차고 맛이 짜며, 위의 열을 내리고 속을 편안하게 하며 소변이 잘 나오도록 돕는 효능이 있다.

이는 체내의 불필요한 열을 식히고 습기를 제거해 위장 기능을 안정시키는 작용으로 해석된다. 소화가 잘되지 않거나 속이 더부룩할 때 좁쌀 죽을 쑤어 먹었던 조상들의 지혜에는 이처럼 의학적인 원리가 담겨 있었다.

길가 강아지풀 섭취, 왜 위험한가

강아지풀
강아지풀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강아지풀이 조의 조상이라는 사실 때문에 길가의 강아지풀 씨앗을 채취해 먹어도 되는지 궁금해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로 안 된다.

도심의 길가나 공터, 농경지 주변에 자생하는 강아지풀은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배출된 중금속이나 미세먼지, 제초제, 농약 등 인체에 유해한 물질에 심각하게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야생 식물의 섭취는 건강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조의 역사적, 영양적 가치를 안전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시중에서 위생적으로 관리, 도정되어 판매되는 좁쌀을 구매하는 것이 유일하고 올바른 방법이다.

강아지풀
강아지풀 / 국립생물자원관

어린 시절 놀잇감이었던 강아지풀은 단순한 잡초를 넘어, 수천 년 전 인류의 굶주림을 해결하고 생존을 도왔던 위대한 작물의 기원이었다. 척박한 땅에서 희망을 틔웠던 구황작물은 이제 현대인의 식탁에서 건강을 책임지는 웰빙 식재료로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길가의 작은 풀 한 포기에 담긴 수천 년의 역사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존재들이 품고 있는 놀라운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전체 댓글 1

  1. 인류의 굶주림을 도왔던 강아지풀이 지금은 길가의 잡초로 알았는데 조의 조상이라니 감동의 내용
    그런데도 그냥 잡초로써 본인의 모습으로 흔하게보는 풀로 오늘날 우리들은 의미도 모르고 지나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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