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바다의 선물, 배말의 생태부터 손질과 조리법까지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가 바위, 그 위에는 전복을 꼭 닮은 작은 생명체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작은 전복’, ‘삿갓조개’라 불리는 배말이다.
봄철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이 작지만 알찬 해산물은, 제철이 지난 지금도 그 깊고 고소한 감칠맛으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바지락의 시원함이나 전복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바다의 에너지를 응축한 듯한 배말의 매력을 파헤쳐 본다.
‘삿갓조개’의 반전, 강철 이빨을 가진 고둥

흔히 ‘삿갓조개’라고 불려 조개의 일종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배말은 소라나 고둥처럼 나선형의 집을 가진 복족강(Gastropoda) 연체동물이다. 이름처럼 삿갓 모양의 단단한 껍데기 속 내면은 전복처럼 영롱한 진줏빛을 띤다.
배말의 생존 비결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치아’에 있다. 학계에 따르면 배말의 치설(radula, 줄 같은 모양의 치아 기관)에는 ‘침철석’이라는 철광물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현존하는 생물학적 물질 중 가장 강한 강도를 자랑한다.
배말은 이 강철 같은 이빨로 바위에 붙은 해조류를 긁어 먹고, 심지어 바위를 미세하게 파내 자신만의 안식처를 만들기도 한다.
이 때문에 바위에 한번 단단히 달라붙은 배말은 손으로 떼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일자 드라이버나 칼처럼 얇고 단단한 도구를 바위와 껍데기 틈새에 넣어 채취해야 한다.
진한 감칠맛의 향연, 배말 활용법

배말의 진정한 매력은 조리 과정에서 드러난다. 크기가 작아 회로 즐기기보다는 익혀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깨끗하게 씻은 배말을 끓는 물에 살짝 데치면, 붉은빛이 도는 살이 껍데기에서 쉽게 분리된다. 이 작은 살점이 바로 바다의 감칠맛을 응축한 보석이다.
가장 손쉽게 배말을 즐기는 방법은 국물 요리에 활용하는 것이다. 된장국에 몇 알 넣는 것만으로도 국물 전체의 깊이와 시원함이 몇 단계는 상승한다.
라면에 넣으면 인공적인 감칠맛과는 차원이 다른, 자연스럽고 진한 해물의 풍미를 더해 ‘배말 라면’이라는 특별한 요리가 탄생한다.

경남 거제나 통영 등 남해안 지역에서는 배말 칼국수를 별미로 친다. 뽀얗고 눅진한 국물은 미역국과 조개 육수의 장점만을 합쳐놓은 듯 진하고 구수하며, 쫄깃한 배말의 식감이 부드러운 면발과 어우러져 최고의 궁합을 선사한다.
이 외에도 데친 배말을 오이, 부추 등과 함께 초고추장 양념에 새콤달콤하게 무쳐내면 여름철 입맛을 돋우는 훌륭한 반찬이 된다. 손질 후 데친 배말 살은 밀봉하여 냉동 보관하면 오랫동안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고단백 저지방’의 명과 암: 효능과 섭취 시 주의점

배말은 맛뿐만 아니라 영양학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대표적인 저지방 고단백 식품으로, 체중 관리나 근력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된다.
또한, 노화 방지에 기여하는 항산화 물질 셀레늄과 혈행 개선에 도움을 주는 오메가-3 지방산 등 각종 미네랄도 함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진한 감칠맛의 원천에는 주의해야 할 지점도 있다. 배말은 감칠맛 성분인 퓨린(Purine) 함량이 높은 대표적인 해산물이다.

퓨린은 체내에서 요산으로 변환되는데, 요산 배출에 어려움을 겪는 통풍 환자나 신장 결석이 있는 사람의 경우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섭취량 조절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다른 해산물과 마찬가지로 개인에 따라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작은 껍데기 속에 바다의 에너지와 강인한 생명력을 응축한 배말은 그 자체로 자연이 선사하는 귀한 선물이다. 그 독특한 풍미와 효능을 제대로 이해하고 즐긴다면, 우리의 식탁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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