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의 보물이자 여름 별미”… 칼륨 풍부한 저칼로리 채소 ‘박’의 재발견

흥부전부터 문헌 기록까지, 박의 역사와 식문화

박
박 / 한식문화사전

여름의 초록빛이 들판을 가득 메우는 계절, 우리 기억 속에서는 친숙하지만 현실의 식탁에서는 멀어진 채소가 있다. 초가집 지붕 위에서 뽀얗게 익어가던 풍경, 마음씨 좋은 흥부의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Lagenaria siceraria)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때 집집마다 넝쿨을 올릴 만큼 흔했던 이 채소는 어째서 이제는 특별한 날에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식재료가 되었을까.

우리 민족의 서사와 삶 깊숙이 자리했던 박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다용도로 활용되던 지혜의 산물이었다. 속을 파내어 만든 박나물은 여름철 입맛을 돋우는 별미였고, 단단하게 말린 껍질은 실용적인 생활용품으로 거듭났다.

삼국시대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유서 깊은 식재료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영양, 그리고 오늘날의 식탁 위에서 그 가치를 되살릴 방법을 탐색해 본다.

문헌 속에 살아있는 박의 역사

박
식탁 위에 놓인 박 / 푸드레시피

박은 인도와 아프리카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재배 역사를 자랑한다.

왕성한 생장력으로 여름 내 덩굴을 뻗어 나가는 박은 7~8월경 저녁 무렵 순백의 꽃을 피웠다가 다음 날 아침이면 이내 자취를 감추는 신비로운 식물이다.

수정 후 불과 15~20일 만에 5kg 이상으로 자라나는 열매는 식용으로 쓰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를 맞는다. 박의 쓰임새는 역사적 문헌에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박
박 / 푸드레시피

18세기 실학자 유중림이 농업 기술과 생활 지혜를 집대성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박을 작게 잘라 쌀과 함께 죽을 쑤고, 여기에 돼지고기나 닭고기, 굴을 더하면 그 맛이 각별하다고 서술되어 있다.

또한, 1800년대 말의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어린 박을 활용한 박나물 조리법이 등장한다.

껍질을 벗겨 얇게 썬 박을 다진 쇠고기, 버섯 등과 함께 볶아 진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방식은 당시의 섬세한 요리 문화를 엿보게 한다.

일제강점기 학자 이용기가 저술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역시 맑은 장국에 박과 양념한 고기를 넣어 끓여 먹는 박 요리를 소개해, 그 명맥이 꾸준히 이어져 왔음을 증명한다.

여름의 맛을 담은 담백한 별미

박나물
접시에 담긴 박나물 / 푸드레시피

오랜 세월 우리 곁을 지켜온 박은 현대의 식탁에서도 그 매력을 발산한다. 가장 대표적인 조리법은 들기름 향이 구수한 박나물이다.

어린 박의 속을 얇게 썰어 소금에 살짝 절여 물기를 짠 뒤, 다진 마늘과 국간장, 들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내면 아삭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다. 여기에 단백질이 풍부한 닭가슴살이나 새우를 곁들이면 영양의 균형까지 완벽해진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박으로 맑은 김치를 담가 먹는 전통이 남아있다.

소금에 절인 박을 얇게 썬 배와 함께 양념에 버무린 뒤, 심심하게 간을 맞춘 김칫국을 부어 완성하는 박김치는 옥처럼 맑은 빛깔과 시원하고 정갈한 맛으로 여름철 최고의 반찬으로 꼽힌다. 상에 내기 직전 잣 몇 알을 동동 띄우면 고고한 멋까지 더해진다.

저칼로리 고영양, 건강 식재료의 재발견

박
반으로 쪼갠 박 / 푸드레시피

박은 맛뿐만 아니라 영양학적 가치도 뛰어나다. 농촌진흥청 국가표준식품성분표에 따르면, 생 박 100g의 열량은 약 14kcal에 불과하고 수분 함량이 96%에 달해 대표적인 저칼로리 식품으로 꼽힌다.

풍부한 식이섬유는 포만감을 주어 체중 조절 식단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성분은 칼륨이다. 박에는 칼륨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체내 나트륨 배출을 돕고 이뇨 작용을 촉진하여 부종 완화에 효과적이다.

이외에도 뼈 건강에 필수적인 칼슘과 인, 철분, 엽산 등 다양한 무기질과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어 남녀노소 모두에게 유익하다.

다만, 한의학적 관점에서 차가운 성질을 지니고 있어 평소 몸이 냉하거나 소화기가 약한 경우에는 과다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

단순한 채소를 넘어, 지켜야 할 문화유산

박
지붕 위에 놓인 박 / 푸드레시피

초가집 지붕에서 식탁 위 별미로, 다시 생활용품으로까지 변신하며 우리 선조들의 삶과 함께했던 박.

산업화와 식생활의 서구화 속에서 점차 우리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갔지만, 그 담백한 맛과 풍부한 영양, 그리고 그 안에 깃든 문화적 가치는 여전히 빛을 발한다.

비록 지금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귀한 몸이 되었지만, 일부 지역의 노력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잊혀가는 우리 전통 식재료에 대한 작은 관심이 모일 때, 박은 다시 한번 우리 식탁 위에서 건강한 여름의 맛을 선사하는 보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