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노란 꽃, 봄에는 귀한 나물 ‘고추나물’의 정체와 효능

‘고추나물’이라는 이름만 듣고 입안이 얼얼해지는 매운맛을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이 식물은 우리가 아는 고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물레나물과에 속하는 들꽃이자 산나물이다.
이름은 가을에 맺히는 열매가 작은 고추를 닮아 붙었을 뿐, 강렬한 이름 뒤에는 쌉쌀한 풍미와 은은한 매력을 감추고 있다. 마침 여름의 끝자락인 지금, 산과 들을 노란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고추나물의 진짜 정체를 알아보자.
여름 들판의 노란 점, 고추나물의 생태

고추나물(Hypericum erectum)은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 특히 양지바른 풀밭이나 약간 습한 곳에서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20~60cm 높이로 곧게 자라는 줄기에는 잎자루 없이 마주나는 타원형 잎들이 특징적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 표면에 검은 점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지금, 7월에서 8월 사이는 고추나물의 개화기다. 줄기 끝에 모여 피는 선명한 노란색 꽃은 여름철 등산로나 산책길에서 쉽게 눈에 띈다.
5개의 꽃잎과 세 무리로 나뉜 수많은 수술이 뭉쳐있는 독특한 형태로, 야생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이다.
이 꽃이 지고 나면 10월경 작은 고추 모양의 열매(삭과)가 익어가는데, 바로 이 모습이 ‘고추나물’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봄의 미각을 깨우는 쌉쌀한 맛

여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고추나물은 사실 이른 봄,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우는 귀한 봄나물이다.
4월에서 5월 사이, 땅에서 갓 올라온 부드러운 어린잎과 순을 채취해 식용한다. 요리법은 대부분의 산나물과 비슷하다.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살짝 데친 뒤 찬물에 헹궈 물기를 꼭 짠다.
고추나물 특유의 은은하고 기분 좋은 쌉쌀함은 그 자체로 매력이다. 이 쓴맛이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하므로 너무 오래 우리기보다는 데치는 시간을 최소화해 아삭한 식감을 살리는 것이 좋다.
이후 간장, 참기름, 다진 마늘, 깨소금 등 기본 양념에 무쳐내면 훌륭한 밥반찬이 된다. 된장국에 넣어 구수한 맛을 더하거나, 고추장 양념에 볶아내도 잘 어울린다.
약초로서의 두 얼굴, 동양의 ‘소연요’와 서양의 ‘세인트존스워트’

고추나물은 식용뿐 아니라 약용으로도 오랜 역사를 지녔다. 한방에서는 꽃이 필 무렵의 식물 전체를 말려 ‘소연요(小連翹)’라는 약재로 썼다.
지혈 및 소염 작용이 있어 토혈, 코피, 외상 출혈 등에 사용되어 왔으며, 이는 함유된 타닌(Tannin) 성분과 관련이 깊다.
흥미로운 점은 유럽에서 우울증 완화에 효능이 있는 허브로 널리 알려진 ‘세인트존스워트(St. John’s Wort)’가 바로 고추나물과 같은 속(Hypericum)에 속하는 매우 가까운 친척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주의사항이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서양고추나물, 즉 세인트존스워트는 ‘히페리신’이라는 성분으로 인해 특정 의약품(항우울제, 경구피임약, 항응고제 등)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등 심각한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햇빛에 대한 피부 민감도를 높이는 광과민성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어 전문가의 엄격한 감독하에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고추나물 역시 약용으로 사용할 때는 그 성분과 특성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식용으로 즐기는 어린순은 안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약효를 기대하고 과량 섭취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름 때문에 생긴 오해와 달리, 고추나물은 여름에는 눈을 즐겁게 하는 꽃으로, 봄에는 입을 즐겁게 하는 나물로 우리 곁에 머문다. 식물의 진짜 모습을 아는 것은 그 이름 너머의 가치를 발견하는 즐거운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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