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에 등장한 ‘풀솜대’, 기력 회복과 항산화 효과로 주목받는 이유

by 김혜은 기자

댓글 0개

입력

지장나물, 이밥나물… 이름에 담긴 구황식물의 역사와 담백한 맛

풀솜대
풀솜대 / 국립생물자원관

햇살이 잘 들지 않는 깊은 숲속, 그늘지고 습한 땅 위에 둥굴레를 닮은 듯한 식물이 조용히 군락을 이룬다.

오늘날에는 그저 소박한 야생초 중 하나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풀은 묵은 곡식은 바닥나고 햇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았던 ‘보릿고개’의 굶주림 속에서 우리 조상들의 허기를 채워준 고마운 생명의 나물이었다.

그 이름, 풀솜대다. 민초를 굶주림에서 구원한 공덕을 기려 ‘지장나물’이라고도 불렀던 이 식물에 담긴 역사와 맛을 알아본다.

이름에 새겨진 구원의 역사: 지장나물과 이밥나물

풀솜대
풀솜대 열매 / 국립생물자원관

풀솜대는 유난히 많은 별명을 가졌는데, 그 이름 하나하나에 곤궁했던 시절의 애환과 염원이 담겨있다. 가장 대표적인 이름인 ‘지장나물’은 불교에서 지옥의 중생까지 구원한다는 지장보살(地藏菩薩)에서 유래했다.

춘궁기 허덕이는 백성을 굶주림이라는 고통에서 구원해 주는 모습이 마치 지장보살의 자비심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숭고한 이름이다.

또 다른 이름인 ‘이밥나물’은 순박한 소망을 담고 있다.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 줄기 끝에 피어나는 작고 하얀 꽃송이들이 마치 탐스럽게 잘 지어진 ‘이밥(쌀밥)’을 닮았기 때문이다.

쌀밥 한 그릇이 소원이었던 시절, 사람들은 풀솜대의 꽃을 보며 배고픔을 달래고 풍요를 꿈꿨을 것이다.

숲속의 쌀밥, 풀솜대의 생태와 둥굴레와 구별법

풀솜대
풀솜대 / 국립생물자원관

국립수목원의 설명에 따르면 풀솜대는 비짜루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비스듬히 자라는 원줄기와 타원형의 잎 모양이 둥굴레와 비슷해 혼동하기 쉽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 구별이 가능하다.

가장 큰 차이는 꽃의 위치다. 풀솜대는 원줄기 끝에 여러 개의 꽃이 우산 모양으로 모여 피지만, 둥굴레는 잎겨드랑이 아래로 종처럼 생긴 꽃이 1~2개씩 매달려 핀다.

즉, 하늘을 향해 쌀밥처럼 뭉쳐 피면 풀솜대, 잎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둥굴레로 구별하면 쉽다. 이 차이점만 기억해도 숲에서 두 식물을 오인할 염려가 없다.

첫맛은 쌉쌀, 끝맛은 달큰… 조화로운 맛의 나물

풀솜대
풀솜대 / 국립생물자원관

구황식물이었다고 해서 맛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풀솜대의 어린 순은 독특한 향과 함께 훌륭한 맛을 지녀, 별미 나물로 손색이 없다.

입안에 넣고 처음 씹으면 쌉싸름한 기운이 먼저 감돌지만, 이내 은은하고 기분 좋은 단맛이 뒤따라온다. 이 ‘맛의 변주’가 바로 풀솜대의 가장 큰 매력이다.

주로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조리하는데, 이렇게 데친 나물은 그 자체로 쌈 채소로 활용해도 훌륭하다. 다른 산나물과 함께 된장이나 고추장, 간장 양념에 무치면 서로의 맛을 해치지 않고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기름에 살짝 볶아내면 고소한 풍미가 더해지며 부드러운 식감을 즐길 수 있고, 비빔밥의 재료로 넣거나 햇볕에 말려 묵나물로 만들어 두고두고 먹기에도 좋다.

전통 의학과 현대 과학이 말하는 효능

풀솜대
풀솜대 / 국립생물자원관

풀솜대는 식용뿐만 아니라 약용으로도 널리 쓰여왔다. 동의보감과 같은 한의학 문헌이나 민간에서는 풀솜대의 뿌리줄기를 가을에 채취하여 말린 것을 약재로 사용했다.

이는 기력을 보충하고 혈액순환을 도우며, 특히 진통 효과가 뛰어나 요통이나 타박상, 사지마비 등에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현대 과학의 시각에서도 풀솜대는 유용한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풀솜대에는 인삼의 대표 성분이기도 한 ‘사포닌(saponin)’을 비롯해 플라보노이드(flavonoid), 폴리페놀(polyphenol) 등 강력한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다.

풀솜대
풀솜대 열매 / 국립생물자원관

이러한 성분들은 우리 몸의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세포의 손상을 막아 노화 방지 및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만, 아무리 좋은 나물이라도 섭취 시 주의가 필요하다. 섬유질이 풍부하므로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먹으면 복통이나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의 체질에 따라 섭취 후 두드러기나 가려움 등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이상 반응이 느껴진다면 즉시 섭취를 중단하고 전문가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풀솜대는 이제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생존의 수단이 아닌, 건강한 자연의 맛과 우리 역사를 함께 음미하는 별미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숲속에서 조용히 자라는 이 작은 풀은, 척박했던 시절을 이겨낸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강인한 생명력을 담은 살아있는 기념비와도 같다.

전체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