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흔했지만 지금은 희귀해진 전통 채소 동아

한 개 무게가 최대 80kg에 달하고 길이는 1m까지 자라는 거대한 열매가 있다. 표면에 하얀 분가루를 뒤집어쓴 모습이 마치 서리를 맞은 듯한 이 채소의 이름은 ‘동아’다.
지금은 우리 식탁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인의 밥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귀한 전통 작물이다. 최근 토종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잊혀가던 동아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역사 속 거인 채소, 동아의 발자취

동아는 동남아시아 또는 인도가 원산지로 추정되는 박과 식물이다. 한반도에서의 재배 역사는 상당히 길 것으로 추정되며, 여러 고문헌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동아’라는 이름은 순우리말이며, 한자로는 겨울 동(冬)과 오이 과(瓜)를 사용해 ‘동과(冬瓜)’라고 부른다. 이는 저장성이 매우 뛰어나 서리가 내린 후 수확해도 겨울 내내 두고 먹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시대 기록은 동아가 당시 매우 흔한 채소였음을 증명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조카 이분이 집필한 ‘이충무공행록’에는 어린 시절 이순신 장군이 동네 아이를 꾀어 동아 서리를 하게 한 일화가 등장한다.
이는 동아가 울타리나 밭에서 흔히 자라 아이들의 장난 대상이 될 만큼 친숙한 작물이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동아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해 온 식문화 유산의 일부다.
거대한 크기에 담긴 영양학적 가치

동아는 압도적인 크기만큼이나 풍부한 영양 성분을 자랑한다. 과육의 95%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여름철 갈증 해소에 탁월하며, 칼로리가 매우 낮아 체중 관리에 효과적인 식재료다. 특히 주목할 만한 성분은 칼륨이다. 100g당 약 170mg의 풍부한 칼륨을 함유하고 있어, 체내 나트륨 배출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나트륨의 과다 섭취가 고혈압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현대인의 식습관을 고려할 때, 동아의 효능은 더욱 의미가 깊다. 칼륨은 나트륨과 균형을 이루며 혈압을 안정적으로 조절하는 데 기여한다. 이뇨 작용을 도와 신장 기능에 부담을 덜어주고 부종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부터 고혈압이나 신장 질환 예방을 위한 민간요법에 동아가 활용된 것은 이러한 과학적 원리에 기반한다. 씨앗인 ‘동과자’ 역시 사포닌, 아스파라긴산 등이 풍부해 기침 완화와 노폐물 배출에 사용되어 왔다.
잊혀가는 유산과 부활의 가능성

한때 전국 각지에서 쉽게 재배되던 동아는 오늘날 소수의 농가에서만 명맥을 잇고 있다. 전북 순창군 등 일부 지역에서 토종 작물 보존 차원으로 재배가 이루어질 뿐이다. 농가들이 재배를 기피하는 주된 이유는 경제성 문제다.
개당 무게가 수십 킬로그램에 달해 수확과 운반이 어렵고, 소비자 수요가 급감하면서 판로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식생활의 서구화와 무, 배추 등 대체 채소의 대량 생산 시스템에 밀려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국내의 상황과 달리 해외에서는 동아가 여전히 사랑받는 식재료라는 사실이다. 특히 대만을 비롯한 중화권 국가에서는 동아를 국이나 볶음 요리에 널리 사용하며, 흑설탕과 함께 조려 만든 ‘동과차(冬瓜茶)’는 국민 음료로 불릴 만큼 인기가 높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공차’의 ‘윈터멜론 밀크티’가 바로 이 동과차를 활용한 것이다. 이는 동아의 활용 가능성이 결코 작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식탁 위 보물을 활용하는 현대적 방법

동아의 맛은 무와 수박 흰 부분을 섞어 놓은 듯 담백하고 시원한 것이 특징이다. 박과 채소 특유의 풍미가 있어 국물 요리에 활용하면 국물 맛을 한층 깊고 개운하게 만든다. 과거 농가에서 무가 귀한 계절에 동아를 썰어 넣어 뭇국처럼 끓여 먹었던 이유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동아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얇게 썰어 나박김치를 담그면 무와는 다른 아삭하고 청량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속을 파낸 동아에 닭이나 오리, 각종 한약재를 넣고 푹 쪄내는 ‘동아백숙’은 여름철 최고의 보양식으로 꼽힌다.
껍질 또한 버리지 않고 차로 끓여 마시면 이뇨 작용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동아를 잼이나 정과로 만들거나, 채식 요리의 주재료로 활용하는 등 새로운 레시피 개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동아는 단순히 거대한 채소를 넘어,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식문화가 담긴 소중한 유산이다. 비록 지금은 잊혀 가는 작물이 되었지만, 그 영양학적 가치와 다양한 활용 가능성은 현대 사회에서도 충분히 빛을 발할 수 있다.
토종 작물의 보존과 소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동아의 부활로 이어져, 우리 식탁을 더욱 풍성하고 건강하게 만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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