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는 버렸는데”…오히려 ‘이 부분’에 진짜 보물이 숨어 있었다

by 김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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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 함량, 열매의 수십 배? 메밀순에 숨겨진 비밀

메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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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녹음이 짙어지는 밭 한편에서 연초록빛 메밀 잎이 무성하게 자란다. 흔히 메밀은 가을의 전령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여름에도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여름에 수확한 메밀은 글루텐 함량이 낮아 열매의 식용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때로는 수확을 포기하고 그대로 밭의 거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여름 메밀의 진정한 가치는 열매가 아닌 연한 잎과 줄기에 숨겨져 있다. 바로 여름 한철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 ‘메밀순나물’이다.

구황작물에서 여름 별미로, 메밀의 재발견

메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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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은 동아시아 북부 온대 지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이전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생육 기간이 60일에서 100일 사이로 매우 짧아 역사적으로 중요한 구황작물의 역할을 수행했다.

흉년이 들어 주식 작물 농사를 망쳤을 때, 그 자리에 급히 메밀을 심어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종대왕 시절 편찬된 구황서 ‘구황벽곡방’과 이를 재편한 ‘구황촬요’에는 메밀 꽃과 콩잎 등을 섞어 쪄 먹는 방법이 기록될 정도로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다.

이러한 메밀은 파종 시기에 따라 여름 메밀과 가을 메밀로 나뉜다. 이 중 상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알이 꽉 차고 풍미가 깊은 가을 메밀이다. 우리가 겨울 별미로 즐기는 메밀냉면도 바로 이 가을 메밀로 만든다.

반면 여름 메밀은 열매의 맛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그 연한 순은 나물로 활용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쓴맛이 거의 없고 식감이 부드러우며, 메밀 고유의 은은한 향을 간직하고 있어 더위에 지친 입맛을 돋우는 데 안성맞춤이다.

메밀순 핵심 성분 ‘루틴’의 작용 원리

메밀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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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순나물의 가치는 단순히 맛에만 있지 않다. 영양학적으로도 메밀 열매를 능가하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 핵심 성분은 ‘루틴(Rutin)’이라는 폴리페놀 화합물이다.

루틴은 모세혈관의 투과성과 취약성을 감소시켜 혈관 벽을 튼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혈액 순환이 원활해지고, 혈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어 고혈압, 동맥경화와 같은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 효과적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루틴의 함량이다. 농촌진흥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메밀 싹의 루틴 함량은 다 자란 메밀 열매보다 최대 27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메밀순나물을 섭취하는 것은 메밀의 핵심 건강 성분을 가장 효율적으로 섭취하는 방법인 셈이다. 이 외에도 비타민 C, E, 셀레늄 등 강력한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여 체내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세포 손상을 막아 면역력을 높이며, 뇌 신경세포의 산화를 방지하여 인지 기능 유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농가와 시장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메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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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순나물의 재발견은 농가와 소비자 시장 모두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농가 입장에서는 기존에 가치가 낮다고 여겨져 녹비작물, 즉 땅의 힘을 돋우는 천연 비료로만 활용되던 여름 메밀을 새로운 소득 작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짧은 생육 기간 덕분에 다른 작물과의 이모작이 용이하며, 친환경적인 재배가 가능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소비자에게는 건강에 유익하고 맛도 좋은 새로운 제철 채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웰빙과 로컬 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메밀순나물은 여름 식탁을 풍성하게 할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조리법 또한 간단하여 활용도가 높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물기를 짠 뒤 된장이나 고추장, 국간장 등 기호에 맞는 양념에 조물조물 무치기만 하면 손쉽게 건강 반찬이 완성된다.

메밀순나물은 농가에 새로운 소득을, 소비자에게는 맛과 건강을 선사하며 우리 식문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잠재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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