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핀 작은 엉겅퀴 ‘조뱅이’, 여름 밥상 위 보약 되는 이유

by 김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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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인 줄 알았더니 동의보감에도 오른 귀한 약초,
쌉쌀한 맛으로 입맛 깨우고 더위 식혀

조뱅이
조뱅이 / 국립생물자원관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길가의 들풀 중에는 저마다의 이름과 특별한 쓰임을 가진 것들이 많다. 여름의 끝자락, 더위에 지친 입맛을 쌉싸름하면서도 달큰한 맛으로 깨우는 조뱅이 역시 우리가 몰라봤던 숨은 보석 같은 존재다.

작은 엉겅퀴를 쏙 빼닮은 모양새로, 예로부터 여름철 식탁을 책임지는 별미 나물이자 상처를 다스리는 귀한 약재로 활용되어 왔다. 조뱅이는 국화과의 두해살이풀로, 엉겅퀴보다 크기가 작아 ‘작은 엉겅퀴’라는 의미의 소계(小薊)라는 한자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조뱅이
조뱅이 / 국립생물자원관

조선시대 의학서적인 ‘동의보감’에는 이 ‘소계’를 ‘조방가새’라는 우리말로 풀었는데, 이 이름이 시간이 흐르며 조뱅이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햇볕이 잘 드는 들판이나 공터에서 자라며, 5월에서 8월 사이 줄기 끝에 지름 3cm 남짓한 붉은 자주색 꽃을 피운다. 잎 가장자리에는 가시 같은 털이 있어 엉겅퀴와 혼동하기 쉽지만, 전체적으로 키가 작고(25~50cm) 아담해 구별할 수 있다.

새가 알려준 신비로운 지혈초 설화

조뱅이
조뱅이 / 국립생물자원관

조뱅이의 가장 대표적인 효능인 지혈 작용과 관련해서는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길을 가던 선비가 뱀에게 발목을 물려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근처에서 똑같이 뱀에게 물린 새 한 마리가 어떤 풀을 쪼아 그 진액을 상처에 바르는 것을 목격했다.

잠시 후 새가 멀쩡히 날아가는 것을 본 선비가 그 풀을 따라 발랐더니, 이내 피가 멎고 통증이 가라앉았다고 한다. 선비의 목숨을 구한 그 신비로운 풀이 바로 조뱅이였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옛이야기를 넘어, 조뱅이의 핵심적인 약성을 정확히 담고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소계에 대해 “성질이 서늘하고 맛이 달며, 어혈을 헤치고 피를 멎게 한다”고 기록하며 토혈, 코피, 혈뇨 등 각종 출혈 증상에 사용하는 약재로 소개했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조뱅이에 풍부하게 함유된 플라보노이드와 같은 항산화 성분들이 혈액 응고를 돕고 염증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외에도 유기산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소화 촉진과 변비 예방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여름철 입맛을 깨우는 식재료 활용법

조뱅이 잎
조뱅이 잎 / 국립생물자원관

약재로서의 쓰임새만큼이나 조뱅이는 여름철 식탁을 풍성하게 만드는 나물로도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주로 부드러운 어린순을 활용하는데, 특유의 쌉쌀한 맛이 있어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데쳐서 찬물에 헹궈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손질한 조뱅이는 된장이나 간장, 고추장 등 어떤 양념과도 잘 어우러져 훌륭한 나물 무침이 된다.

구수한 된장국에 넣으면 시원한 맛을 더하는 국거리가 되고, 별다른 조리 없이 데친 나물을 쌈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밥반찬이 된다. 쓴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조뱅이의 독특한 풍미는 더위로 잃었던 입맛을 되찾아 주기에 충분하다.

섭취 전 반드시 알아야 할 주의사항

조뱅이
조뱅이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하지만 조뱅이를 섭취할 때는 몇 가지 주의가 필요하다. 한의학적으로 찬 성질을 지니고 있어 평소 몸이 차갑거나 소화기가 약해 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은 과다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자궁을 수축시키는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기록이 있어 임산부는 섭취를 금해야 한다. 무엇보다 야생에서 직접 채취할 때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비슷한 모양의 독초와 혼동하지 않도록 정확한 생김새를 숙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길가나 공장 주변 등 오염된 토양에서 자란 조뱅이는 중금속을 함유하고 있을 수 있으므로 절대 채취해서는 안 된다.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것이 확인된 경우에만 식용으로 활용해야 안전하다. 우리 발밑에서 조용히 자라는 들풀 하나에도 이처럼 흥미로운 이야기와 유용한 쓰임새가 숨어있다.

올여름이 가기 전, 잡초로만 여겼던 조뱅이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그 맛을 음미해 보는 것은 자연이 선사하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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