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잡곡이 아니다… 여름철 ‘보약’이라 불린 곡물, ‘율무’의 재발견

by 김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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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속 ‘의이인’의 효능부터 율무밥, 율무차 황금 레시피까지

율무
숟가락에 올린 율무 / 게티이미지뱅크

여름의 한복판, 땀으로 기력이 쇠할 때 우리 선조들은 밥상에서 답을 찾았다. 쌀밥에 섞인 뽀얀 알갱이, 씹을수록 쫄깃한 식감과 구수한 단맛을 내는 율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평범한 잡곡처럼 보이지만 동양 의학에서는 귀한 약재로 대접받았던 율무의 가치가 현대 영양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약재와 곡물을 넘나든 ‘의이인(薏苡仁)’

율무
컵에 담긴 율무 / 게티이미지뱅크

율무(Coix lacryma-jobi)는 단순한 식재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는 율무를 ‘의이인’이라 칭하며, “몸의 불필요한 습기(濕氣)를 제거하고 소변을 이롭게 하여 몸을 가볍게 만드는 효능이 있다”고 기록했다.

무더위와 습기로 몸이 무겁고 붓는 느낌이 들 때, 우리 선조들이 율무밥이나 율무죽을 찾은 데에는 이러한 지혜가 담겨있다.

소화 기능을 돕고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도 뛰어나, 더위로 입맛과 소화력이 떨어진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곡물이었다.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 현대 영양학이 주목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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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무차와 잡곡 / 게티이미지뱅크

전통적 지혜는 현대 과학을 통해 그 가치를 증명받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율무는 백미나 현미 등 다른 곡물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월등히 높고, 류신, 이소류신 등 필수 아미노산을 고루 갖추고 있어 여름철 근육 손실을 막고 기력을 보충하는 데 효과적이다.

풍부한 비타민 B군과 무기질은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돕는다. 또한 율무 속 특정 성분인 코익세놀라이드는 여러 연구를 통해 항염 및 항산화 효과에 대한 가능성이 제시되면서, 단순한 영양 보충을 넘어 기능성 식품으로서의 잠재력까지 주목받고 있다.

통율무와 정율무, 그리고 밥, 죽, 차 활용법

율무밥
그릇에 담긴 율무밥 / 푸드레시피

율무를 제대로 즐기려면 두 가지 종류의 차이를 아는 것이 좋다. 껍질을 벗겨 도정한 정율무는 식감이 부드럽고 조리 시간이 짧아 우리가 흔히 밥에 넣어 먹는 형태다.

반면, 씨눈과 속껍질이 살아있는 통율무는 영양가는 더 높지만 식감이 단단해 충분히 불리거나 오랫동안 삶아야 하므로 죽이나 차로 활용하기에 더 적합하다.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단연 율무밥이다. 쌀과 율무를 7:3 혹은 8:2 비율로 섞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율무를 30분 이상 충분히 불린 뒤 쌀과 함께 안치면, 압력밥솥의 도움으로 겉돌지 않고 쫀득하게 어우러진다. 밥알 사이에서 터지는 율무의 식감과 은은한 구수함은 여름철 달아난 입맛을 되찾아준다.

율무
프라이팬에 볶는 통율무 / 푸드레시피

속이 불편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이 필요할 땐 율무죽이 제격이다. 푹 삶은 통율무를 믹서에 곱게 갈아 물을 붓고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끓여낸다.

이때 소금으로 담백하게 간을 하거나 꿀을 살짝 더해 달콤하게 즐길 수 있어 환자식이나 아이들 영양 간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율무차는 율무의 구수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기름을 두르지 않은 팬에 통율무를 노릇하게 볶아두면 보관도 용이하고, 필요할 때마다 뜨거운 물에 우려내 은은한 차로 마실 수 있다.

이렇게 볶은 율무를 찬물에 넣어 냉장고에서 하룻밤 우리면, 더운 날 갈증을 해소해주는 시원한 냉율무차로 변신한다.

보관법과 섭취 시 주의사항

율무
그릇에 담긴 율무 / 게티이미지뱅크

율무는 습기와 해충에 취약하므로 건조하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기본이다.

전라남도, 전라북도, 충청북도 등지에서 주로 재배되는 국산 율무는 알이 굵고 윤기가 흐르는데, 좋은 품질을 오래 유지하려면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하는 것이 산패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다만, 섭취 시 주의할 점도 있다. 율무는 약간 차가운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자궁 수축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임산부는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된다.

식탁 위 건강을 책임질 똑똑한 곡물

율무차
율무차 / 게티이미지뱅크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곡물을 넘어, 몸의 균형을 잡고 기력을 보하는 ‘보약’과도 같았던 율무. 동양의 오랜 지혜가 담긴 ‘의이인’에서 출발해 현대 영양학이 주목하는 풍부한 단백질과 기능성 성분까지, 율무의 가치는 시대를 관통한다.

쫄깃한 식감과 구수한 풍미는 물론, 우리 몸을 이롭게 하는 그 효능은 오늘날 건강한 식탁을 책임질 똑똑한 곡물로서 율무를 다시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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