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마다 꼭 끓인다는 ‘이 국’… 색과 맛 모두 살리는 비밀이 있다

by 김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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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감 살리는 ‘이 타이밍’이 핵심

아욱국
아욱국 / 게티이미지뱅크

10월 가을의 문턱에서 우리 식탁을 건강하게 채우는 대표적인 녹색 채소는 단연 아욱이다. 된장을 풀어 구수하게 끓여낸 아욱국은 소박하지만 속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한국인의 대표적인 가정식이다.

하지만 조리 순서를 조금만 잘못 지켜도 풋내가 나거나 질겨지기 쉬운데, 그 비밀은 아욱의 독특한 성분과 화학적 특성에 숨어있다.

식감과 색을 좌우하는 과학적 원리

아욱국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아욱을 손질할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끈거리는 점액질의 정체는 ‘뮤신(Mucin)’이라는 수용성 식이섬유다.

뮤신은 위벽을 보호하고 단백질의 소화 흡수를 돕는 이로운 성분이지만, 열에 오래 노출되면 과도하게 용출되어 국물을 탁하게 만들고 식감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아욱의 부드러운 식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조리 마지막 단계에 넣어 짧게 익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욱국의 선명한 녹색을 유지하는 것 역시 과학 원리에 기반한다. 아욱의 엽록소(클로로필)는 열에 약하며, 특히 산성 환경에서 오래 가열하면 페오피틴이라는 갈색 물질로 변한다.

된장을 푼 국물은 약산성을 띠므로, 아욱을 처음부터 넣고 푹 끓이면 색이 누렇게 변하고 쓴맛이 올라온다. 국물이 한소끔 끓어오를 때 아욱을 넣고 3~5분 내외로만 빠르게 익혀내야 선명한 색과 구수한 맛을 모두 잡을 수 있다.

소화기부터 뼈 건강까지, 아욱의 효능

아욱
아욱 / 게티이미지뱅크

아욱의 영양학적 가치는 단순한 채소 이상이다. 위에서 언급된 뮤신 성분은 위 점막을 코팅하여 위산을 중화하고 속 쓰림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소화 기능이 약한 노년층이나 위염을 앓는 이들에게 아욱국이 속 편한 음식으로 추천되는 이유다. 풍부한 수용성 식이섬유는 장내 환경을 개선하고 변비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또한 아욱은 ‘칼슘의 왕’으로 불릴 만큼 뼈 건강에 이로운 미네랄이 풍부하다. 국립농업과학원 식품성분표에 따르면, 데친 아욱 100g에는 약 206mg의 칼슘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는 시금치(105mg)의 약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칼슘의 체내 흡수를 돕고 뼈의 밀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비타민 K 역시 풍부해 성장기 어린이나 골다공증 위험이 있는 중장년층에게 매우 유익한 식재료다.

고서(古書) 속 아욱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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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욱 / 게티이미지뱅크

아욱의 효능은 현대 영양학뿐만 아니라 우리 전통 의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아욱을 ‘규채(葵菜)’라 칭하며 ‘성질이 차고 독이 없어 장과 위의 열을 내리고, 막힌 것을 뚫어주어 소변을 잘 나오게 한다’고 기록했다.

이는 아욱이 체내의 불필요한 열을 식히고 이뇨 작용을 도와 몸의 부기를 빼주는 효능이 있음을 의미한다. 환절기 건조함으로 몸에 열이 오르거나 소화가 잘 안 될 때 우리 선조들이 아욱을 찾았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아욱국
아욱국 / 게티이미지뱅크

아욱국 한 그릇에는 제철 식재료의 영양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과학적 원리와 전통적 지혜가 모두 담겨있다.

아욱의 핵심 성분인 뮤신과 엽록소의 특성을 이해하고 조리 순서에 적용하는 작은 차이가 맛과 건강의 격을 결정한다. 올가을, 과학적 원리를 담아 정성껏 끓여낸 아욱국으로 환절기 건강과 입맛을 동시에 챙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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