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이 빚어낸 식재료 황태,
밑간과 불 조절로 완성하는 최고의 밥도둑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허전해진 입맛을 채워줄 감칠맛 가득한 밑반찬이 필요한 때다. 이 계절의 밥상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씹을수록 구수하고 달큰한 맛이 우러나오는 황태채 무침이다.
하지만 황태채 무침은 자칫 잘못 조리하면 딱딱하고 질겨지기 쉬워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메뉴이기도 하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의 황태채 무침을 만드는 핵심 비법은 의외로 간단한 두 가지, 바로 ‘밑간’과 ‘불 조절’에 있다.
황태,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황태채 무침의 맛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주재료인 황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황태는 단순히 명태를 말린 ‘북어’와는 다르다.
강원도 대관령 등지의 덕장에서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수십 번 얼고 녹기를 반복해 만들어진, 시간과 자연이 빚어낸 식재료다. 이 과정에서 살이 노랗게 부풀어 오르며 식감이 부드러워지고 깊은 감칠맛이 응축된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 따르면 황태는 100g당 단백질 함량이 80g에 육박하는 고단백 식품이자, 간 기능에 도움을 주는 메티오닌 등 아미노산이 풍부해 예로부터 귀한 식재료로 여겨져 왔다.
부드러움의 핵심, 밑간과 수분 공급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한 첫 단계는 황태채 150g을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손으로 결 따라 찢거나 가위를 이용해 자르되, 너무 길지 않게 손질해야 양념이 고루 묻어난다. 이때 손에 걸리는 자잘한 가시는 식감을 해치므로 꼼꼼히 제거하는 것이 좋다.
손질한 황태채는 곧장 양념에 무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밑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이 질긴 식감을 막는 황금 열쇠다. 믹싱볼에 황태채를 담고 매실청 100ml, 참기름 2큰술, 들기름 2큰술을 넣어 조물조물 버무린다.
이 상태로 10분간 그대로 두면 건조했던 황태의 단백질 조직 사이로 액체 성분이 스며들어 ‘재수화(rehydration)’가 일어난다. 이는 가열 시 단백질이 급격히 수축하며 딱딱해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주는 과학적 원리다.
매콤달콤 감칠맛, 양념장 무치기

황태채가 밑간을 머금고 촉촉하게 변신하는 동안 양념장을 준비한다. 고추장 3큰술, 간장 3큰술, 꿀 2큰술, 그리고 다진 마늘 2큰술을 한데 모아 고루 섞으면 맛의 균형이 완벽한 양념장이 완성된다.
꿀이 없다면 올리고당이나 물엿으로 대체해도 좋고, 밑간에 사용한 매실청이 없다면 시판용 매실 음료를 조금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10분 뒤, 충분히 부드러워진 황태채에 준비된 양념장을 넣는다. 이때는 강한 힘으로 치대기보다 손에 힘을 빼고 살살 버무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수분을 머금어 부드러워진 황태채가 부서지지 않도록 다루면서, 양념이 표면에 촘촘하게 코팅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제대로 무쳐진 황태채는 붉은빛의 윤기가 반지르르하게 흐른다.
타지 않게 살짝, 중약불 볶음의 기술

이제 마지막 단계인 볶기 과정이다. 양념에 버무린 황태채를 달군 팬에 올리고 중약불에서 재빨리 볶아낸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래 볶지 않는 것’이다.
이미 밑간으로 부드러워진 황태채는 오래 가열하면 애써 공급했던 수분이 다시 날아가 딱딱해지고, 양념 속 꿀과 고추장은 쉽게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양념이 전체적으로 어우러지며 고소한 향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1~2분 내로 불을 끄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불을 끈 상태에서 통깨를 넉넉하게 뿌려 고소함을 더하면, 질기지 않고 부드러운 황태채 무침이 완성된다. 따뜻할 때 바로 먹어도 훌륭한 밥반찬이 되며, 완전히 식혀 밀폐용기에 담아두면 냉장고에서 일주일가량 보관하며 든든한 밑반찬으로 즐길 수 있다.
김에 싸 먹거나 밥 위에 얹어 덮밥처럼 즐겨도 별미다. 매콤함을 원한다면 청양고추를, 아이들을 위해서는 고추장 양을 줄이고 케첩을 살짝 더하는 등 입맛에 맞게 변형도 자유롭다. 자연의 시간과 조리의 과학이 만난 이 부드러운 황태채 무침이야말로 우리 밥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진정한 ‘밥도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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