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선 버리던 골뱅이, 한국에선 ‘국민 안주’로… 골뱅이의 기막힌 신분상승

by 김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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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뱅이의 수입 현황부터 효능까지,
한국인만 즐기는 특별한 안주의 비밀

골뱅이찜
골뱅이 찜 / 게티이미지뱅크

새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린 소면과 아삭한 채소, 그리고 그 중심에서 쫄깃한 식감을 뽐내는 골뱅이. 퇴근 후 허기진 배를 채우고 회포를 푸는 자리에서 이 ‘국민 안주’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이토록 사랑하는 골뱅이가, 정작 바다 건너 원산지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바다의 잡초’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때 버려지던 식재료가 어떻게 한국인의 소울 푸드가 되었을까.

한국인의 식탁, 영국 어부의 지갑

골뱅이
쟁반에 담긴 골뱅이 / 푸드레시피

오늘날 우리 식탁에 오르는 골뱅이 통조림의 약 90%는 수입산이다. 그중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영국과 아일랜드 등 북대서양에서 잡히는 ‘유럽산 물레고둥(Buccinum undatum)’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은 섬나라임에도 해산물 소비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어부들에게 물레고둥은 수익성 없는 골칫거리였다. 그물에 걸려 나오면 다시 바다에 버려지기 일쑤였다.

이런 물레고둥의 운명을 바꾼 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골뱅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버려지던 물레고둥은 영국 어부들에게 막대한 수입을 안겨주는 ‘효자 상품’으로 환골탈태했다.

“영국 골뱅이 어부들은 한국인을 위해 일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직 한국 시장만을 위한 조업이 이루어지는 독특한 글로벌 공급망이 형성된 것이다.

1970년대 을지로에서 시작된 ‘골뱅이 신화’

골뱅이
시장에 있는 골뱅이 / 게티이미지뱅크

골뱅이가 국민 안주로 등극한 배경에는 1970~80년대 산업화의 중심지였던 서울 을지로가 있다.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친 공장 노동자와 인쇄소 직원들은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배를 채울 안주가 필요했다.

이때, 장기 보관이 가능한 통조림 골뱅이에 파채, 고춧가루, 식초 등을 넣어 즉석에서 버무려낸 ‘골뱅이무침’이 탄생했다.

자극적이면서도 시원한 맛은 막걸리, 소주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했고, 저렴한 가격에 여럿이 나눠 먹기 좋아 순식간에 을지로의 명물이 되었다.

‘을지로 골뱅이 골목’의 탄생은 골뱅이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한 시대의 애환과 낭만이 담긴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였다.

영양과 안전, 똑똑하게 즐기는 법

골뱅이탕
골뱅이탕에 있는 골뱅이 / 게티이미지뱅크

골뱅이는 100g당 약 15g의 단백질을 함유한 고단백 저지방 식품이다. 피로 해소에 좋은 타우린과 항산화 작용을 하는 셀레늄도 풍부해, 술안주는 물론 기력 보충용 건강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골뱅이를 즐길 때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통조림이 아닌 생물 골뱅이를 직접 조리할 경우, 일부 종의 타액선(침샘)에는 ‘테트라민(Tetramine)’이라는 독소가 들어있을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이 독소는 가열해도 제거되지 않으며, 섭취 시 두통, 어지럼증, 구토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손질된 제품을 구매하거나, 조리 시 반드시 타액선을 깨끗하게 제거해야 안전하다.

골뱅이무침
그릇에 담긴 골뱅이무침 / 게티이미지뱅크

북대서양 바다에서 버려지던 물레고둥이 한국의 을지로에서 ‘골뱅이’라는 새로운 이름과 생명을 얻기까지, 그 여정에는 한국인 특유의 다이내믹한 식문화와 시대상이 녹아있다.

타국에서는 외면받는 식재료의 가치를 발견하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해 세계 유일의 소비국이 된 골뱅이의 이야기는 음식에 담긴 문화의 힘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오늘 밤, 골뱅이무침 한 접시에 담긴 이 기막힌 스토리를 안주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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