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컹한 식감 뒤에 숨은 강력한 항산화 성분

한국인이 유독 기피하는 채소 1위는 무엇일까. 인터넷 설문조사 플랫폼 패널나우가 3만 837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가지’가 가장 비호감 채소로 선정됐다.
응답자 다수는 가지 특유의 식감, 특히 물컹거리는 질감을 기피의 주된 이유로 지목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가지의 영양적 가치와 다른 문화권의 활용법을 고려할 때 재고될 필요가 있다.
조리법이 가른 호불호

가지에 대한 부정적인 식감은 한국의 전통적인 가지 조리 방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 가지의 과육은 식물성 스펀지라 불릴 만큼 미세한 공기주머니를 포함한 다공성 구조(유조직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나물 무침 등을 위해 물에 삶거나 찌는 방식으로 조리하면, 이 공기주머니들이 무너지며 수분을 과도하게 흡수해 특유의 흐물흐물하고 물컹거리는 식감을 만든다. 반면 미국, 이탈리아, 중국 등 다른 문화권에서는 가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
얇게 썬 가지에 빵가루를 입혀 튀기거나(미국 ‘에그플랜트 파르메산’), 올리브유와 허브를 뿌려 오븐이나 그릴에 굽는 방식(지중해식), 혹은 뜨거운 기름에 빠르게 볶아내는(중식) 방식이 보편적이다.
이 경우 높은 온도에서 내부 수분은 빠르게 증발하고 겉면이 갈색으로 변하는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며, 단단하고 고소한 식감과 풍미를 갖게 된다.
영양 손실 부르는 ‘찜’ 요리

공교롭게도 한국인이 기피하는 ‘찜’ 방식은 영양학적으로도 손실이 큰 조리법이다. 가지의 상징인 보라색 껍질에는 ‘나수닌(Nasunin)’이라는 강력한 항산화 성분이 집중되어 있다.
이는 안토시아닌의 일종으로, 뇌세포 손상을 막고 혈관 속 노폐물을 배출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하지만 이 나수닌 성분은 수용성(물에 잘 녹는)이 매우 강하다.
미국 공인 영양사 김민정 씨에 따르면, 가지를 물에 오래 삶거나 찌면 이 핵심 영양소가 물로 다량 용출되어 손실된다. 김 영양사는 나수닌과 지용성 비타민(비타민 E 등)의 흡수율을 모두 높이기 위해 기름을 활용해 짧은 시간 볶거나 굽는 조리법이 훨씬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퍼플푸드’ 섭취 편중 심각

가지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한 대표적인 ‘퍼플푸드’다. 안토시아닌은 강력한 항산화 성분으로 활성산소로 인한 세포의 노화를 늦추고 혈관벽을 강화한다. 이는 혈압 조절 및 심혈관 질환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퍼플푸드에는 가지 외에도 비트, 자색 고구마, 적양파, 적양배추 같은 채소와 블루베리, 포도, 푸룬 같은 과일이 포함된다. 하지만 한국인의 채소 섭취는 색상 편중이 심각한 수준이다.
2017년 한국갤럽과 암웨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은 주로 녹색이나 흰색 채소(배추, 무, 마늘 등) 위주로 섭취하며 보라색 채소 섭취는 현저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1위에서 12위로…채소 섭취량 급감

특정 색상 기피 현상은 한국인의 총 채소 섭취량 감소 추세와 맞물려 우려를 더한다. 한국은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의 채소 섭취 국가였다.
2015년 OECD ‘보건 보고서’는 한국을 채소 섭취 1위 국가로 평가했으며, 2000년 농촌경제연구원은 1인당 연간 소비량을 187.6㎏으로 집계했다. 하지만 서구화된 식단이 확산하며 섭취량은 급격히 감소했다.
질병관리청의 2022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한국인의 하루 평균 채소 섭취량은 226g으로, 2013년 282g 대비 약 10년 만에 19.9% 급감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2020년 자료를 분석한 2023년 인사이더 몽키 보고서에서 한국은 12위(164㎏)로 밀려났다. 1위는 크로아티아(약 330㎏), 2위는 중국(329㎏)이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채소 섭취가 절대적인 양뿐만 아니라 다양한 색상을 고루 섭취하는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암협회는 30년 이상 ‘하루 5가지 색깔의 채소와 과일을 먹자’는 ‘파이브 어 데이(Five A Day)’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한식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통 한식의 약 70%는 채소로 구성될 만큼 훌륭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섭취량이 줄어드는 현상은, 공중 보건 차원에서 가지를 포함한 다양한 색상의 채소, 특히 퍼플푸드에 대한 섭취 전략과 관심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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