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기 대신 튀기면 위험합니다”… 닭고기 섭취량과 발암물질 생성의 상관관계

by 김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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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국립연구소 20년 추적 연구
고온 조리 시 생성되는 발암물질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

오리고기
철판 오리고기 / 푸드레시피

다이어트나 건강 관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붉은 고기 대신 선택하는 닭고기와 오리고기.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해 ‘건강한 육류’의 대표 주자로 여겨졌던 가금류의 과다 섭취가 오히려 소화기암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번 연구는 닭고기 섭취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경종을 울리며, 섭취량과 ‘조리 방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지난 4월, SCI급 국제학술지 ‘뉴트리언츠(Nutrients)’에 실린 이탈리아 국립소화기연구소(IRCCS Saverio de Bellis) 연구팀의 논문은 이러한 연관성을 장기간에 걸쳐 추적했다.

연구팀은 이탈리아 성인 4869명의 건강 데이터를 무려 20년간 추적 분석하는 대규모 코호트 연구를 진행했다.

20년간의 추적, 가금류 섭취와 사망 위험의 연관성

오리고기
도마위에 놓인 생 오리고기 / 푸드레시피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일주일에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300g 이상 섭취한 그룹은 100g 미만으로 섭취한 그룹에 비해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이 27% 높았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소화기 계통의 암으로 인한 사망 위험인데, 이 위험도는 무려 2.3배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소화기암이란 식도, 위, 대장, 간, 췌장 등에 발생하는 암을 총칭한다. 주 300g은 대략 중간 크기의 닭가슴살 한두 덩어리에 해당하는 양으로, 결코 아주 많은 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연구팀은 이러한 위험성의 배경으로 가금류 자체의 성분과 조리 방식을 지목했다. 닭고기, 오리고기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지만, 부위에 따라 지방 함량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어떻게 조리하는가’에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고온 조리’… 치킨과 구이가 위험한 이유

치킨
접시에 담긴 치킨 / 푸드레시피

연구팀이 지적하는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바로 ‘고온 조리’ 과정에서 생성되는 발암물질이다.

고기를 150℃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튀기거나 불에 직접 굽게 되면, 헤테로사이클릭아민(HCAs)과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라는 두 종류의 강력한 발암물질이 생성될 수 있다.

헤테로사이클릭아민(HCAs)은 육류에 풍부한 아미노산과 크레아틴 성분이 고온과 만나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만들어진다. 육류 표면이 갈색으로 변하며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과정에서 다량 생성된다.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는 고기의 지방이 뜨거운 불판이나 숯불에 떨어질 때 발생하는 연기에 포함된 물질로, 이 연기가 다시 고기 표면에 달라붙어 흡수된다.

이러한 물질들은 소화기관의 점막 세포에 손상을 주고 DNA 변이를 일으켜 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바삭하게 튀긴 치킨이나 숯불 닭갈비와 같은 요리는 맛은 좋을지 몰라도 건강에는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균형 잡힌 시각과 한계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오리고기
철판에 굽는 오리고기 / 푸드레시피

물론 이 연구 결과를 닭고기나 오리고기 자체를 낙인찍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연구팀 스스로도 이번 연구가 참가자들의 설문에 의존한 ‘관찰연구’라는 점을 한계로 인정했다.

관찰연구는 특정 집단의 생활 습관과 질병 발생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인과관계’임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튀긴 닭고기를 주 3회 이상 먹는 사람들은 채소 섭취가 부족하거나, 흡연, 운동 부족 등 다른 건강하지 않은 생활 습관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가능성(교란변수)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닭고기 오리고기
도마위에 놓인 닭고기와 오리고기 / 푸드레시피

또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이미 붉은 고기(소고기, 돼지고기)를 ‘2A군 발암 추정 물질’로, 소시지나 햄과 같은 가공육은 ‘1군 발암 물질’로 명확히 분류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가금류 역시 과도한 양을 잘못된 방식으로 조리할 경우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더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론적으로 이번 연구가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절제’와 ‘지혜’다.

닭고기와 오리고기는 여전히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지만, 그 섭취량을 주 300g 미만으로 조절하고, 조리할 때는 가급적 튀기거나 굽는 고온 조리 대신 삶거나 찌는 저온 조리 방식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어떤 음식이든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오랜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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