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루리나부터 미역까지, 해조류 섭취가 혈압에 미치는 놀라운 영향

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역국, 고소한 김 한 장, 감칠맛을 더하는 다시마. 우리가 일상적으로 즐겨온 이 친숙한 해조류가 소리 없이 혈압을 낮추는 강력한 ‘혈관 지킴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대규모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최근 영국 연구팀이 발표한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해조류를 꾸준히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혈압이 유의미하게 감소했으며, 특히 고혈압 환자에게는 그 효과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번 연구의 신뢰도는 매우 높다. 최근 SCI급 국제 학술지 ‘인간 영양 및 식이요법 저널(Journal of Human Nutrition and Dietetics)’에 게재된 영국 플리머스 대학의 연구는, 기존에 발표된 29편의 무작위 대조시험(RCT)을 종합 분석한 ‘메타분석’ 연구다.
메타분석은 개별 연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의 위험을 줄이고 가장 객관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현존하는 가장 신뢰도 높은 연구 설계 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
바다가 선사하는 ‘혈압 안정제’, 과학으로 입증되다

연구팀이 1583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 결과, 분말, 정제, 음료 등 다양한 형태로 해조류를 섭취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수축기 혈압이 평균 2.05㎜Hg, 이완기 혈압이 평균 1.87㎜Hg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다.
이 수치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인구 전체로 확대하면 심뇌혈관 질환 발생률을 크게 낮출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혈압 개선 효과가 이미 고혈압, 비만, 당뇨병 등 대사질환의 위험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약 3배 더 강력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는 해조류가 혈압이 정상 범위에 있는 건강한 사람에게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고, 혈압 조절이 시급한 사람에게는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스마트’한 식품임을 시사한다.
또한 46세 이상 중장년층에서도 뚜렷한 혈압 강하 효과가 확인되어, 나이가 들수록 혈관 건강에 신경 써야 하는 이들에게 희소식이 되고 있다.
혈관을 이완시키는 해조류 속 핵심 성분들

해조류가 어떻게 혈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연구팀은 특정 성분 하나가 아닌, 해조류에 함유된 다양한 생리활성 물질들의 복합적인 작용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그 중심에는 칼륨과 생리활성 펩타이드가 있다. 칼륨은 우리 몸에서 혈압을 높이는 주범인 나트륨의 배출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체내 나트륨과 칼륨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혈압을 자연스럽게 조절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해조류 속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생기는 특정 펩타이드들은 전문 고혈압 치료제인 ‘ACE 억제제’와 유사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펩타이드들은 혈관을 수축시키는 효소의 활성을 방해하여 혈관을 부드럽게 이완시키고 혈류가 원활하게 흐르도록 돕는다.
이 외에도 미역귀나 다시마의 끈적한 성분인 푸코이단과 알긴산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혈액을 맑게 하며, 풍부한 항산화 물질과 오메가-3 지방산 역시 혈관의 염증을 줄여 전반적인 심혈관 건강에 기여한다.
가장 강력한 효과 ‘스피루리나’, 그리고 섭취 시 주의점

이번 메타분석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스피루리나(Spirulina)’의 강력한 효과였다. 스피루리나를 섭취한 경우, 수축기 혈압은 평균 5.28㎜Hg, 이완기 혈압은 3.56㎜Hg나 감소해 다른 해조류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를 보였다.
스피루리나는 약 35억 년 전부터 존재해 온 남조류의 일종으로, 단백질 함량이 높고 필수 아미노산,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해 ‘슈퍼푸드의 왕’으로도 불린다.
스피루리나의 혈압 강하 효과는 특유의 푸른색을 내는 핵심 색소 성분인 피코시아닌(Phycocyanin)이 강력한 항산화 작용과 함께 혈관을 이완시키는 산화질소(NO)의 생성을 촉진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다양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해조류 섭취 시에는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요오드와 중금속 문제다. 특히 미역, 다시마와 같은 갈조류에는 갑상선 호르몬의 원료인 요오드가 매우 풍부하다.
건강한 성인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나 저하증 등 관련 질환이 있는 경우 과도한 요오드 섭취는 오히려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권고하는 성인 요오드 일일 상한 섭취량은 2.4mg이므로, 다시마 환이나 분말 등을 건강기능식품 형태로 섭취할 때는 함량을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또한, 해양 오염으로 인한 중금속 축적 우려도 있으므로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서 인증한 제품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김, 미역, 다시마와 같은 해조류는 단순한 반찬을 넘어 혈압을 관리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강력한 자연의 선물이다.
최신 과학은 이러한 전통적인 식재료의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약에 의존하기에 앞서, 매일의 식단에 다채로운 해조류를 포함시키는 작은 습관의 변화가 당신의 혈관 건강을 지키는 가장 쉽고도 현명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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