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넘어 프리미엄 식용유로
전통 자원의 현대적 가치

화려한 붉은 꽃잎에 가려져 있던 진짜 보물, 동백나무 씨앗이 품은 황금빛 액체 ‘동백기름’이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과거 어두운 밤을 밝히던 귀한 등불이자 여인들의 머릿결을 지키던 미용 재료에서, 이제는 건강한 식탁과 깨끗한 피부를 위한 프리미엄 자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 전깃불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동백기름은 단순한 기름이 아닌 어둠을 몰아내는 빛의 원천이었다. 다른 식물성 기름에 비해 그을음이 적고 불꽃이 안정적이라 실내 등잔 기름으로 최고급 대우를 받았다.
기름 한 병이 집안의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졌던 이유다. 제주와 남해안의 해녀들이 거친 바닷바람과 소금기로부터 머리카락을 보호하기 위해 모발과 두피에 꼼꼼히 발랐던 것 또한 동백기름의 잘 알려진 역사다.
어둠을 밝히고 머릿결을 지키던 지혜

동백기름의 이러한 가치는 단순한 경험을 넘어 과학적 근거를 가진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동백기름의 지방산 중 약 80% 이상은 단일 불포화지방산인 올레산(Oleic acid)으로 구성된다.
올레산은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구조를 가져 산소와 쉽게 결합하지 않는데, 이는 동백기름이 다른 기름에 비해 산패에 강해 오래 보관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다. 이러한 안정성은 등불의 불꽃을 오래도록 밝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피부와 모발에 도포했을 때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막을 형성하는 역할도 했다.
민간에서는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기력을 돋운다는 믿음으로 소량씩 섭취하기도 했으며, 상처나 피부 질환이 있는 곳에 발라 천연 연고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이는 동백기름이 가진 항염 및 항균 효과에 대한 선조들의 경험적 지혜가 담겨있는 부분이다.
시간이 흘러 현대 과학은 동백기름의 가치를 화장품 원료에서 먼저 발견했다. 인체의 피지 성분과 유사한 구조 덕분에 피부에 겉돌지 않고 깊숙이 흡수되어, 립밤부터 샴푸, 바디오일까지 다양한 제품의 핵심적인 천연 보습제로 자리 잡았다.
과학이 재조명한 영양과 쓰임새

화장품 원료에 머물던 동백기름의 가치는 이제 미식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일부 농가와 장인들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식용 동백기름은 올리브오일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특히 주목할 점은 동백기름의 발연점이다.
연구에 따르면 동백기름의 발연점은 약 250℃ 내외로, 샐러드드레싱 등 저온 요리에 주로 사용되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약 180~200℃)보다 월등히 높다. 이는 샐러드는 물론 볶음, 구이, 부침 등 고온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한식 요리에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프리미엄 동백기름은 대부분 냉압착(Cold-press) 방식으로 생산된다. 이는 열을 가하지 않고 낮은 온도에서 씨앗을 압착해 기름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열에 약한 영양소의 파괴를 최소화하고 기름 고유의 은은한 향과 신선함을 보존하는 장점이 있다.

과거 손으로 빻고 쪄서 짜내던 전통 방식에 비해 산패 위험을 크게 줄여 최고 품질의 기름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대적 쓰임새의 이면에는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전통이 있다. 특히 제주에서는 마을 단위로 동백나무 군락을 관리하고 가을이 되면 함께 열매를 수확해 기름을 짜는 과정이 단순한 생업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과 문화를 잇는 중요한 연례행사로 이어진다.
집집마다 돌확을 두고 기름을 짜던 기억,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인 ‘동백박’을 땔감이나 비료로 알뜰히 사용하던 지혜는 지역의 소중한 문화 자산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전통이 동백꽃 축제와 연계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개발되어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전통을 품고 미래를 여는 황금빛 자원

한때 어둠을 밝히던 등불이었고, 거친 바다로부터 머릿결을 지켜주던 보호막이었던 동백기름은 이제 과학적 검증을 거쳐 피부를 가꾸는 천연 원료이자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건강한 식재료로 우리 곁에 다시 섰다.
높은 올레산 함량과 안정성, 그리고 피부 친화적인 특성은 자연 그대로의 가치를 중시하는 현대 소비 트렌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단순한 기름 한 병을 넘어, 한반도 남쪽의 기후와 역사, 그리고 공동체의 이야기가 응축된 문화유산으로서 동백기름의 가치는 앞으로 더욱 확장될 것이다. 전통의 지혜와 현대 기술이 만나 재탄생한 이 황금빛 오일이 우리의 일상에 어떤 풍요로움을 더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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