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 1kg 20만 원
잣송이 채취부터 껍질 제거까지 수작업

2025년 기준 국내산 잣 1kg의 시세는 18만 원에서 20만 원 선을 형성한다. 햇잣이 본격 출하되는 가을 수확철에는 품질에 따라 25만 원을 넘기기도 한다.
잣이 다른 견과류에 비해 유독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는 이유는, 20미터가 넘는 나무 꼭대기에서 사람이 직접 씨앗을 채취해야 하는 극도로 위험하고 고된 노동 과정과 낮은 생산성에 기인한다.
하늘 위 20미터의 노동

잣은 잣나무의 솔방울 형태인 ‘잣송이’ 속에 들어 있다. 잣나무는 높이가 20미터를 훌쩍 넘는 교목으로, 사람의 손이 쉽게 닿지 않는다.
잣 채취꾼들은 ‘승주기’라고 불리는 뾰족한 발 장비를 신고 나무에 직접 오른다. 이들은 별다른 현대적 안전장치 없이 나무 꼭대기 부근에서 긴 장대 끝의 낫으로 잣송이를 쳐서 떨어뜨린다.
헬멧을 착용하지만, 수십 미터 위에서 떨어지는 단단하고 뾰족한 잣송이에 맞는 사고 위험은 여전하다. 떨어진 잣송이는 산비탈이나 덤불 속에 흩어져 이를 다시 수거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노동력을 요구한다.
이 고강도 작업은 가을 한철에 집중되며, 체력과 숙련도가 모두 필요하다. 숙련된 채취꾼은 잣송이를 모은 양에 따라 하루 30만 원 이상의 일당을 받기도 한다.
한 시즌 동안 중소기업 연봉에 맞먹는 수입을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그만큼 높은 노동 강도와 추락 사고 등의 위험에 대한 보상 성격이 짙다.
송진과 씨름하는 후처리 과정

위험하게 수확한 잣송이는 즉시 잣이 되지 않는다. 잣송이를 야외에 쌓아두고 일정 기간 자연 건조해 단단한 송이가 입을 벌리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끈적한 송진이 대량으로 발생해 작업자의 손이나 기계에 달라붙어 공정을 더디게 만든다.
건조된 잣송이에서 잣 씨앗(피잣)을 털어내고, 다시 기계와 사람의 손을 이용해 단단한 껍질을 까서 비로소 우리가 아는 잣 알맹이를 얻게 된다.
이처럼 생산성이 낮고 수작업 비중이 높아, 과거 모든 공정이 수작업이었던 시절에는 잣 한 됫박 값이 금값과 맞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신라송에서 왕의 잣죽까지

잣은 역사적으로 매우 귀한 식재료로 대접받았다. 국내에서 주로 수확되는 ‘한국잣(Pinus koraiensis)’은 신라 시대 당나라로 수출되어 ‘신라송(新羅松)’이라 불리던 대표적인 수출품이었다.
작은 씨앗이지만 씹을수록 깊어지는 고소함과 특유의 향, 오들오들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 덕분에 한식의 품격을 높이는 핵심 재료로 쓰였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콩 대신 잣을 곱게 갈아 만든 ‘잣국수’를 손님에게 내는 최고급 대접 음식으로 여겼다.
또한 잣죽은 임금의 수라상에 오르는 보양식이었으며, 강원도 평창에서는 새로 부임한 도임에게 잣죽을 올리는 전통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는 잣이 예로부터 ‘청결과 장수’를 상징하며 신선이 먹는 ‘영물의 씨앗’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피놀렌산과 현대적 활용

잣은 100g당 약 670kcal로 칼로리가 높은 편이지만, 내용물은 건강한 영양소로 가득 차 있다. 대부분이 식물성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잣에 풍부한 ‘피놀렌산(Pinolenic acid)’은 다른 견과류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잣 고유의 오메가-6 지방산이다.
이 성분은 식욕 억제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고 혈중 중성지방 조절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항산화 성분인 비타민 E와 마그네슘이 풍부해 심혈관 건강에 도움을 준다.
현대에도 잣은 샐러드 드레싱, 파스타, 페스토 소스 등 고급 요리의 재료로 쓰인다. 서양에서는 유럽 잣(Pinus pinea)을 ‘피뇰리(pignoli)’라 부르며 활용하는데, 한국산 잣은 피뇰리보다 크기는 작지만 향이 훨씬 진해 세계 시장에서 더 비싸게 평가받는다.

다만, 잣은 기름기가 많아 하루 권장량인 10g(약 15~20알) 이상 과다 섭취 시 설사나 피부 트러블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잣 한 알에는 20미터 잣나무를 오르는 채취꾼의 위험천만한 노동과 잣송이를 말리고 껍질을 까는 수많은 손길이 담겨 있다.
생산량이 제한적이고 수확 과정이 험난해 높은 가격이 형성되지만, 잣은 고유의 고소한 풍미와 영양학적 가치로 인해 여전히 명절 선물이나 고급 한식 재료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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